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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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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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음악메모(28)/부산포에 퍼지는 은은한 실내악의 향기
  
        
실내악(Chamber Music)이라고 하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사람들이 아직
도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대개는 "어렵다"는 게 이
유다. 교향곡, 관현악곡, 협주곡에 비해서 실내악은 역시 대중화를 이루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음향적 캐패시티에서나 정서적 버라이어티에
서 여타의 부문에 비해 일반인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
히, 자극적이고 현란한 것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있어서 실내악이란 쉽게 수
용될 수 없는 "거만하고 재미없는 대상"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봄직 하다.

그런데, 최근의 나라 안팎 음악계 사정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실내악 붐이 형
성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의 실내악은 서울에만
편중되어 있었고, 그나마 그 숫자란 극히 미미한 것이었다. 그러던 형편이 지
금에 와서는 현저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가히 실내악의 전성시대
가 곧 눈앞에 닥쳐올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부산의 실내악 역사는 <부산 피아노 트리오>의 제갈삼(피아노, 부산대교수)
김진문(바이얼린) 배종구(첼로, 동아대교수)에게서 시작된다. 그들의 연주회
는 끊어질 듯 말듯 그렇게 힘겹게 이어져 왔고 그것이 곧 부산 실내악의 과정
이고 역사였다. 부산 피아노 트리오 이외에 현악4중주단도 만들어지긴 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했고 그나마 트리오에 의해서 실내악은 연명되어 왔다.

그러던 차에 30대 중반의 패기 넘친 젊은 연주가들이 부산에 뿌리를 내리기 시
작하면서 고사직전에 있었던 부산 실내악의 실낱같은 생명에 새로운 활기가
붙기 시작했다. 부산대학교의 이상근 교수가 "프로 무지카"라는 학생 실내악
을 출범시킨 것이 첫 신호였고, 뒤를 이어서 김영희 교수(부산대, 바이얼린)
가 "부산 신포니에타"의 닻을 올렸고, "부산 트리오"가 역시 곧 태어났다. 불과
10년 사이에 유수한 앙상블 팀이 탄생됐고 그들의 연주 내용도 만만치 않은 수
준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부산 트리오의 일본 공연(5월19일부터 25일까지)은 부산 실내악의 음악적 자
신감이 해외에까지 떨쳐진 즐거운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의 탄생
은 불과 3년전의 일이었다.

한명희(피아노, 부산대교수)는 이화여대와 대학원을 거쳐 美 南일리노이 주립
대학에서 수련했고 '87년엔 모교의 교환 교수를 지냈다. 김영희(바이얼린, 부
산대교수)는 이화여대 및 대학원, 국립교향악단을 거쳐 독일 뮌헨음대와 빈
(Wien)국립음대를 수련했고 그곳에서 연주생활도 오래했다.  고재용(첼로, 부
산시향 수석)은 단국대와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수학했고 동아콩쿠르 입상, 국
립교향악단단원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한명희의 안정된 컨트롤, 김영희의 노
련한 적응력, 고재용의 풍부한 감수성으로 부산 트리오는 독특한 개성과 발성
을 갖춘 "뛰어난 앙상블"을 들려준다. 불과 3년만에 형성된 이러한 결과는 때때
로 경탄과 갈채로 응답되기도 한다.

부산트리오의 일본 공연은 일본의 KBC방송(규슈 아사히 방송사)의 공식 초청
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에겐 국제적 관례에 의한 사례와 환대가 제공됐다. 그들
이 연주한 지방은 이이츠카市(嘉 )를 비롯 다나까와市와 후쿠오카(福岡) 등이
었고, KBC의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여 도합 4번에 걸친 연주회를 열
었다.

일본은 음악 잡지사가 "실내악사전"을 출간하면서 현재의 세계 실내악 현황을
상세히 리포트 할만큼 전례 없는 실내악 붐을 형성하고 있다. 실내악 사전에
따르면 현재 일본엔 52개의 실내악 팀이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악합주
단은 통계에서 제외됨) 또 그들의 거의 대부분은 일본 전역에 비교적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연주기량에서의 평준화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현재 평론가
들의 진단이다.

필자가 도쿄에서 만난 일본의 저명한 음악평론가 하세가와 다께히사(長谷川
武)는 일본의 실내악을 밝은 면과 어두운 양면으로 분석, 전망하고 있었다. 아
마추어 팀들의 활동과 지방 실내악단의 연주가 활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프로페셔널의 활동에 큰 자극이 되고 있는 것이 밝은 면이고, 여전히 일본의
대학들이 실내악 부문의 투자와 인재양성에 인색한 전통이 어두운 면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네 사정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실내악을 위한 활발한 투자이다. 불과 인구 2만 안팎의 소도시에
조차 그들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연주홀을 갖고 있었고, 특히 도쿄에는 "카
잘스 홀"이라는 실내악 전용홀(88년 개관, 511석)이 개관되어 해마다 아마추
어 실내악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이 부문의 향상에 큰 기여를 하고있다. 일본
전국에 산재해 실내악 홀은 무려 38개소에 이른다. 부산 트리오의 연주회장의
하나였던 "오크 홀"은 풀 콘서트 피아노 3대(스타인웨이 등)를 구비한 것 외에
도 자동 음향조절 장치까지 완비된 이상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물
론 한 나라의 경제력과도 비례되는 것이겠으나, 인구 400만의 부산, 그 부산을
대표한다는 문화회관 대극장에 콘서트용 피아노가 1대 밖에 없는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둘째, 일본은 실내악 진흥을 위한 수많은 유익한 제도를 갖고 있었다. 카잘스
홀이 실내악의 대중화를 위해 "아마추어 실내악 축제"를 매년 여는 것을 비롯,
동경문화회관의 실내악 시리즈, 각 市의 구청이 주최하는 실내악 시리즈, 요꼬
하마 음악당의 실내악 축제도 이러한 제도 가운데 하나다. "텔레만 앙상블"이
라는 뛰어난 실내악단의 리더 노부하라(延原武春)의 말에 의하면 기업인들의
투자도 실내악 진흥에 큰 몫을 한다고 한다.

카잘스 홀이 주최하는 아마추어 페스티벌 역시 大正海上文化財團이 스폰서로
서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었다. 나고야에서 만난 여류 피아니스트 사사끼(佐佐
木)는 "일본 실내악"의 리더였다. 스폰서가 매년 몇이나 되는가? 라고 물었더
니 약 200여 개인 및 기업이라고 쉽게 대답했다. 오크홀에 나온 그곳 시장
이 "어느 나라든 경제적으로는 어느 시기에 가면 평준화가 이루어지겠지만 문
화는 그렇게 되지 않겠기에 연주홀을 짓고 시민교실을 연다"고 말했다.

부산 트리오의 일본 공연을 계기로 우리는 일본 실내악단의 음악적 수준도 가
늠할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적어도 음악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 한국은 희망
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보유하고 있는 시설, 제도, 후원의 질량은 비교되기 어
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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