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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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Subject  
   꽃잎처럼 아름답게 살자
  
                      
안재홍(安在鴻)의 '春風千里'에 이런 대목이 있다. "꽃은 봄의 중추요. 생명의
표지라. 탐화봉첩(貪花蜂諜)이란 말이 있거니와 꽃을 탐내는 것은 꿀벌뿐이 아
닐 것이니 무릇 생명을 가지고 생명을 예찬하는 자 누구든지 꽃을 좋아할 것이
다". 이어령은 '증언하는 캘린더'라는 수필에서 "꽃은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꽃들은 침묵의 언어를 가지고 사랑을, 평화를, 인정을, 그리고 꿈
을 가르쳐 준다. 아무렇게나 벼랑에 흩어져 핀 진달래는 소박한 전원의 사랑
을 말한다. 3, 4월의 벚꽃은 감정을 들뜨게 하고 오뉴월의 다알리아는, 그리고
해바라기는 눈부신 정열과 강렬한 생을 맛보게 한다. 그윽한 국화, 싸늘한 수
선화, 쓸쓸한 달맞이 꽃, 청순한 제라늄, 뜨거운 셀비아, 그 모든 꽃들은 우리
에게 위안과 희망과 기도와 사색의 자세를 준다."고 꽃을 예찬하고 있다.

한국의 봄은 양지 바른 언덕의 이름 없는 들풀의 가녀린 새싹에서 발아되고 샛
노란 개나리로 꽃피기 시작해서 백색, 자색의 탐스런 목련으로 활짝 열린다.
그 봄의 길목에 우수, 경칩이 놓여 있고 춘분(春分)이 되면 제주에 벚꽃이 피
기 시작하여 밀물 같은 벚꽃의 북진이 이루어진다.

유럽의 봄은 5월에 찾아든다. 유럽의 겨울은 유난히 길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네들의 봄은 특별한 감동과 감격을 불러 일으켜 수많은 시인과 음악가들이 5월
을 예찬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봄은 만물의 소생을 갖게 하는 계절일 뿐 아니
라 인간의 사랑과 기쁨도 봄에 다시 꽃처럼 피어나는 것으로 느끼고 생각했다.

꽃은 여인에 비유되고 사랑에 대위되고 슬픔, 기쁨, 질투, 죽음에도 함께 한
다. 하이네의 '그대는 꽃과 같이'를 보자.

그대는 꽃과 같이 아름답게 웃는다.
그대를 볼 때마다 나의 마음 아프다.
그대의 얼굴에 손을 대고
"하느님이여 그대를 지켜 주소서"
"영원히 이와 같이 깨끗하게 하소서"라고 빌리라.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시인이 "나의 마음 아
프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눈이 시릴만큼의 아름다움은 눈물을 만들만큼 그
렇게 큰 위력이 있다.

17세기, 나폴리 악파의 거장 알렉산드로 스카를랏티(A.Scarlatti, 1659-1725)
의 독창 칸타타 '제비꽃'은 꽃을 노래한 성악곡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고 청순
한 작품이다.

  이슬을 맞아 향기로운
  아름다운 제비꽃
  수줍어 나뭇잎에 얼굴 가리고
  내 보람이 허망하다고 나무라누나

언덕이든 골짝이든 어디에나 강인한 생명의 뿌리를 내리면서 새봄의 새아씨처
럼 수줍게 꽃을 피워 올리는 보랏빛 제비꽃, 그 강인한 자생력 때문에 '오랑캐
꽃'이라는 험상궂은 별명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제비꽃의 매력은 "수줍
어 나뭇잎에 얼굴 가리고" 있는 청초함에 있다. 스카를랏티의 멜로디는 이 꽃
의 가녀린 아름다움을 너무도 사랑스럽게 노래하고 있다.

슈베르트의 노래에 등장하는 꽃들은 사랑으로 번민하는 젊은 연인들의 상담자
로서, 혹은 연민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전령자로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의 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중 제9곡 '물레
방앗간의 꽃'을 보자.

시냇가 언덕 위에 푸른 꽃이 피었네
시냇물도 즐겁게 사랑스러운 푸른 눈
날 사랑하는 꽃이
날 사랑하는 꽃이
그대의 창문 아래 이 작은 꽃을 심으리
고요한 밤이 오면 그대의 꿈속에 들어가
날 위해 하소연해 주오
날 위해 하소연해 주오
조용하게 눈을 감고 달콤한 잠을 잘 때면
속삭여 주오 꿈속에서
"날 잊지 마오"라고
그것이 나의 소망
그것이 나의 소망

밤마다 연민의 몸부림을 치면서도 수줍어 차마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던
물레방앗간의 견습공 청년이 우연히 시냇가 언덕 위에서 찾아낸 물망초 한 송
이에게 자기를 대신한 사랑의 전령사가 되어줄 것을 청하는 상냥하고 간절한
노래다. 쉽게 뜨거워 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오늘의 사랑의 풍속도와 비교해
보면 신화 같은 느낌을 준다. 때문에 이 노래는 아름답고 눈물겹고,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슈만은 10살 연하의 어린 신부 클라라와의 결혼을 앞두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
한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 있었다. 둘의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클라라의 부
친이자 자신의 은사이기도한 비크 교수를 법정에 불러낸 끝에 쟁취한 빛나는
사랑의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해서 그의 영혼은 수백 수천의 사랑의 노래들로
충일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사랑의 노래중 하나가 "미르테의 꽃" 이라는 가
곡집이다. 미르테는 금잔화, 혹은 월계꽃으로 번역된다. 결혼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장식으로 쓰이는 꽃이며, 순결을 나타낸다. 슈만은 이 가곡집을 불타
는 사랑의 정열로 단숨에 쓰고 결혼식 전야에 신부에게 바쳤다. 제7곡 '연
꽃'(하이네 작)을 보자.

연꽃은 햇빛에 머리 숙이고
꿈꾸는 밤을 기다린다
달은 애인
흔들어 일으키면
꽃은 친밀하게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사랑의 탄식에 눈물을 흘린다

뜨거운 사랑의 열기를 안으로 내연시키면서 은근하고 부드럽게 노래하는 이
가곡은 사랑의 아픔으로 눈물 흘리는 연인들에겐 더할 수 없는 위안을 준다.

한국 가곡에 나타나고 있는 꽃들은 서양 사람들의 꽃들과 다르다. 그 꽃들은
보다 큰 의미를 갖고 등장한다. 한국 최초의 예술가곡이라 일컬어지는 "봉숭
아"만 해도 그렇다. 봉숭아는 다만 꽃으로서의 봉숭아가 아니라 일제의 압정
에 신음하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 자체이기도 하고, 붉게 멍이 든 망국의 한이
기도 했다. 때문에 이 봉숭아는 요즘처럼 시원스레 마당 한 가운데 피어있질
못하고 '울 밑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네 모양이 처량'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하면 '오! 내 사랑 목련화야' 라고 시작되는 김동진의 칸타
타 "목련화"는 우리 민족의 강인한 기개와 벅찬 희망을 노래해서 듣는 이의 심
장을 고동치게 한다.

동양적 삶은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이해된다. 물론 꽃도 자연의 작은
한 부분이다. 해서, 인간도 꽃도 결코 두드러뵘이 없이 표현된다. 그것이 동양
의 멋이기도 하다. 그 좋은 예가 조두남의 "산도화"(박목월詩)에서 찾아진다.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 송이 피는데
봄눈이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
사슴이 나려와 발을 씻는다.
석산에는 보랏빛 은은한 기운이 돌고
조용한 진종일 그런 날에
산도화 산 마을에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멧새 소리
산록을 내려가면 잦아지는데
3월을 건너가는 햇살 아씨
청석에 어리는 찬물 소리
반은 눈이 녹은 산
마을의 새 소리
청전 산수도에 삼월 한나절
산도화 두어 송이 늠름한 품을
산이 환하게 틔어 뵈는데
한 마리 아롱진 운시 한 구

눈을 지긋이 감고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따뜻한 3월에 졸리운듯 고요롭게
누워있는 산 계곡이 펼쳐진다. 은자의 멋이랄까, 정중동(靜中動)의 매력이랄
까! 봄이 닥아서고 있다. 봄을 닮은 삶을 갖자. 그래서 꽃잎처럼 아름다운 삶
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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