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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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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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 사진
위 : Josephine von Brunswick  
아래 : 유서를 썼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집

프란시스 베이컨은 <연애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연애는 인생에 있어서 때로는 유혹의 여신
이 되고 때로는 복수의 여신이 되어 많은 화를 낳는다. 연애는 무방비 상태로 열어 놓은 마음 뿐
아니라, 요새처럼 견고한 마음에도 뚫고 들어오는 모양이다. 이 연애의 감정이 지나쳐서 사물의
본질이나 가치가 무시되고,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적합한 것처럼 느껴
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이한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사랑하면서 동시에 현명하기는 불가능하
다”는 말은 명언이다.(中略) 연애는 동등한 사랑으로 보답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심의 보이지 않
는 모멸을 받거나, 두 가지 중 하나가 되는 것이 정칙이다.”

베토벤(1770-1827)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게 그 자신의 의지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생애는 불공평한 연애로 고뇌에 빠졌던 흔적들이 많다. 그러나 그 불공평한 연애사건이 구
체적 자료들(누구? 언제? 어느 정도?)은 어느 것 하나도 분명한 게 없다. 베토벤이 남긴 몇 통의
편지에서 이니셜로 표기 되고 있는 여인들과 그의 제자나 친구, 혹은 전기작가들이 주장하고 있
는 몇 명 연인에 대한 불확실한 서술만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거의 그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난 연인들은 귀족 출신인 <테레제 브룬스비크>, <요제피
네 브룬스비크>, <테레제 말파티> 등 세 여인이고, 이들을 흔히 <불멸의 연인>으로 지칭한다. 불
멸의 연인은, 이 세 여인 이외에도 거론되는 경우가 있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로는 셋 가운데
한 사람이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일 것이라는 것에 합의된 듯싶다.

1949년 여름, 헝가리 출신의 <요제피네 데임> 백작부인과 그의 가족들이 남긴 편지와 문서 등이
경매에 붙여졌는데, 그 경매품속에 지금까지 전혀 공개된 일이 없었던 13통의 베토벤의 편지가
들어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 편지들의 수신자는 요제피네였고 베토벤이 쓴 어휘 등의 내
용으로 보아 요제피네가 바로 불멸의 연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요제피네는 1779년 3월 28일, 아나톨 브룬스비크 백작(1745-1792)의 세 째로 태어났다. 21살
이었던 1800년에 언니 테레제, 오빠 프란츠, 여동생 샬로트와 함께 베토벤과 친교를 맺은 것으
로 추정된다. 그리고 얼마 뒤엔 사촌 줄리에타 귀치아르디가 베토벤 친교그룹에 합류했다.(베토벤
의 전기를 쓴 신틀러는 줄리에타를 불멸의 연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베토벤은 그녀에게 월광 소
나타를 헌정했다).

브룬스비크가의 딸들이 베토벤과 만나게 된 것은 피아노 레슨 받기를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요제
피네와 베토벤이 최초로 상면한 것은 1799년 5월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때만 해도 이미 베토벤
의 명성은 빈에서 절대적인 것이었고 그가 아무나 제자를 삼지 않는다는 평판이 있는 터여서 요
제피네의 어머니인 백작부인이 직접 베토벤을 방문해서 레슨 허락을 받아냄으로써 베토벤과의 관
계가 시작됐다.

베토벤은 열성을 다해 레슨 했는데, 1시간 예정이 4-5시간으로 연장되는 일이 흔했다고 했다.  
이 무렵 요제피네는 47살의 요제프 데임 백작(Joseph Carlcount Deym)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있었는데 어머니 역시 적극적으로 딸을 설득해서 결국 결혼했다. 후일 언니 테레제는 동생이 “늙
은 남편에게 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데임 백작은 결혼한 지 4년 반이 지났을 때 프라하에서 급사했고, 이때부터 요제피네의 삶은 고
난의 연속이었다. 그녀에겐 네 자식이 있었는데 교육이 큰 문제였다. 아이들을 맡길 유능한 교육
자를 찾아 다녔고 그렇게 해서 만난 인물이 에스토니아 출신인 크리스토프 폰 슈타켈베르크였다.
그는 아이를 맡는 조건으로 요제피네의 남편이 되겠다는 제안을 했고 둘은 1810년 2월에 결혼
했다. 순전히 ‘자녀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요제피네는 재혼했다.

베토벤의 연애편지 13통은 요제피네가 데임백작과 결혼했을 때부터 재혼하기 이전까지의 기간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거의 모든 편지는 <데임 백작부인>으로 되어있고 몇 통은 <브룬스비크 집
에서 태어난>이라고 수신인이 적혀있다. 베토벤은 달아오르는 사랑의 정열을 편지마다 가득 담고
있는데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서 자주 그녀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를 함께 하고 음악회를 여는 등
만나는 횟수가 잦았고 어쩌다 며칠 만나지 못할 땐 초조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는 투정이 그
의 편지를 메우기도 했다.

이 무렵 두 사람의 관계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던 테레제는 동생 샬로테에게 보낸 편지에 “그런
데 페니(요제피네의 애칭)나 베토벤이나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가르쳐다오. 조심하지
않으면 안돼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갖고 있어야해. 그것은 슬픈 의무이긴 하지만 더 슬
픈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염려하고 있다.

이러한 주변의 눈초리를 의식한 베토벤은 요제피네에게 그간의 세평이나 소문을 소상히 쓴 다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두 사람 이외에도 아무도 문제로 삼고 있지는 않는 것입니다.
(中略) 오! 당신의 사랑에 의해서 내 행복이 쌓아올려지도록, 그것이 더 많아지도록 힘써 주세요.
오! 사랑하는 J(요제피네의 이니셜), (中略) 당신을 만난 그때부터 그것은 내게 그 밖의 어떤 사랑
의 싹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결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정복했습니다. (中略) 오!
신이시여! 무엇을 아직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인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지, 당신에
게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런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심장이 나를 위해서 뛰게 될 때가 언
제 올 것인지-- 내 심장은 죽을 때까지 당신을 위해서 쉬지 않고 뛸 것입니다. 사랑하는 J, 안녕
”이라고 사랑을 호소하고 있다.

당시, 베토벤은 귓병의 악화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휴양 차 갔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쓸 만큼 심각하게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자신을 일거에 변화시켜서 희망적인 삶을 바
라볼 수 있게 한 것이 순전히 요제피네의 사랑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그가 썼던 표현만을 모아보면, <당신의 충실한 베토벤> <내 마음의 천사여> <사랑하는 오
직 한 사람의 J, 베토벤> <천사-내 마음의-내 목숨의> <언제까지나 당신에게 순종하는 베토벤>
등이다.

그러나 요제피네는 언니 테레제가 판단했던 것처럼 한때 베토벤과 결혼할 것을 고려했지만 워낙
성급하고 격정적이고 변하기 쉽고 상처받기 일쑤였던 그의 정신 상태에 기가 질리기도 했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신분의 차이 때문에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친교를 지속시켰다.

그녀의 심리를 엿보게 하는 편지가 있다. “베토벤씨, 당신과 나눈 교제는 이번 겨울을 통해서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 한시도 또 무엇 하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기뻐하고 계시는
건지 슬퍼하고 계시는 건지 그건 당신 자신이 아는 일입니다. (中略). 당신에게 반한 기분은 직접
뵙기 전부터의 일로 그것이 당신의 친절로 자라났습니다. 내 마음속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당
신을 좋아하게 한 것입니다. (中略). 당신과의 교제가 나에게 준 기쁨은 당신의 사랑이 관능적인
것만 아니라면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이 관능적인 애정에 만족할
수 없음을 당신은 노하고 계시는 겁니다. 당신이 원하는 데로 따르면 나는 신선한 경계를 범하게
됩니다. 살펴 주세요.”

베토벤과 요제피네가 분명히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이 편지에서 ‘관능적인
사랑’에 대한 애매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신분의 차이, 남녀의 차이에서 오는 사랑의 유한성
을 인식한 그녀의 신중한 처신이라고 보여진다. <관능적 애정>이라는 그녀의 표현은 독자들이 자
유롭게 해석해야 할 부분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요제피네가 슈타켈베르크(Christoph Baron von Stackelberg)와 결혼함으로
써 단절된 듯 보인다. 언니 테레제는 1817년 7월 12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요제피네는 루
이지(베토벤)의 불행 때문에 몹시 상심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아내였다면 그 위인을 위해
불가능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요제피네와 베토벤사이에는 서로의 입장과 생각의 차이는 있을지
언정 사랑의 불꽃을 다투어 피워 올렸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사랑의 교환은 지극한 부부애
를 테마로 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탄생시키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기도 했다.

요제피네가 과연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었는가? 하는 문제도 물론 관심사이긴 하겠지만, 한 위
대한 예술가의 사랑이 신분적 차이에서 기인된 불균형한 애정관계로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는 한 인간의 비극과 슬픔에 우리의 마음이 간다. “연애는 동등한 사랑으로 보답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심의 보이지 않는 모멸을 받거나 두 가지 중 하나가 되는 것이 정칙이다”라고 말한 베
이컨의 충고처럼 베토벤은 요제피네로 부터 후자의 대접을 받았다.

이것은 비단 요제피네의 경우 뿐 아니라 불멸의 연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다른 여성들 경우도 한
결 같다. 베토벤이 평생을 독신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불행하고 불공평한 진실의 전말이다. 그가
남긴 말. “무한한 정신력을 가지면서도 미구에 쇠망해 가는 우리는 고통과 즐거움만을 위해 태어
났습니다. 그리고 그중 선택된 사랑은 고통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고통과 투쟁을 통해서 승리를 획득한 위대한 인물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최후의 교향곡
제9번 제4악장에서 바리톤의 입을 빌려서 절규했다. “친구여! 이토록 시끄러운 소리가 아닌 더
아름다운 소리는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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