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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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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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과 격정의 로맨티스트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 1803-1869)


  
1827년 9월 어느 날, 파리의 오데옹 극장, 영국에서 온 셰익스피어 극단의 <햄릿>이 공
연되고 있었다. 빅토르 위고, 뒤마, 죠르즈 상드, 프로스퍼 메리메, 발자크 등 프랑스 예
술계의 저명인사들 틈바구니에 무명의 작곡학도 베를리오즈도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
었다. 오필리아 역은 아일랜드 출신의 핼리엣 스미드슨(Harriet Smithson)이 맡았다.
헬리엣은 <광란의 장면(제4막5장)> 연기 도중 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임기응변으로 멋지게 대처해 오히려 원래의 대사보다 월등한 극적 효과를 만들었다. 이
멋진 연기로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일약 파리의 최고 인기스타가 됐다. 특히 베를리오즈
는 뻑 갔다. 열광이 연모로 발전하고 마침내는 그 짝사랑이 병적인 징후로 나타나는 데
까지 이르렀다. 이때의 심리상태를 회상록에 이렇게 썼다. “나는 셰익스피어와 영감에
찬 여배우에게 파리사람 모두가 열광해 있는 기막히게 멋진 오필리아를 생각하며 찬란한
그녀의 영광과 나의 이름 없음을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나는 나섰다. 그녀
에 대해서 알려져 있지 않은 나의 이름을 불같은 노력으로 빛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러한 단단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2년의 세월이 흘러가도록 유명해지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1년이 흘렀을 때 그는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헬리엣에 대해 일종의 보복적 성격을
띤 <환상교향곡>을 발표했다. 환상교향곡은 다음과 같은 서문을 갖고 있다. “병적인 감
수성을 지닌 어떤 젊은 음악가가 절망적인 사랑의 상처를 참을 길 없어 자살하기 위해
다량의 아편을 먹었다. 그러나 죽음에는 이르지 못하고 환상 속에 빠지게 된다. 그 환상
에 사랑의 추억이, 영혼의 떨림과 열정의 파도들이 우수와 함께 나타나 마침내 화산처럼
폭발하고 만다. 그 미칠 듯한 고뇌, 미치광이 같은 질투, 부드럽고 종교적인 위로에 복
귀, 그리고 무도회, 여름 저녁나절의 산책, 이르는 곳마다 연인의 환영이 나타나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마침내 환상 속에서 그는 연인을 죽이고 그 죄로 인해 형장으로 향한다.
형장에 그녀의 환영이 다시 나타난 순간 운명의 일격이 그의 목을 친다. 그의 영혼은 지
옥에서 마녀의 향연에 초대된다. 그리고선 최후의 심판 나팔이 울린다”. 이 서문은 이
악곡의 스토리(프로그램)를 대신한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교향곡 역사의 혁명이었다.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복
수로 치닫고 있는 이 교향곡은 실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허지만 정작 이 곡을
들려주고 싶었던 헬리엣은 영국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러나 베를리오즈와 헬리엣의 운명
의 끈은 2년 뒤에 극적으로 다시 이어졌다. 1832년 12월에 있었던 환상 교향곡의 재연
이 있었을 때 헬리엣이 객석에 있었다. 어떻게든 둘을 만나게 해주려는 베를리오즈 친구
들의 배려였다. 이때 그녀는 프랑스의 여러 지방에서 영어연극을 공연했지만 실패를 거
듭한 나머지 빚을 잔뜩 짊어진데다 인기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딱한 지경에 있었다.
반면,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의 성공으로 일약 유명한 작곡가로 변신해 있었다. 베를
리오즈에게 헬리엣의 딱한 처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베를리오즈는 청혼했다. 스
미슨은 받아 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이후 20여년에 걸쳐 숱한 상처를 남긴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겼지만 헬리엣은 무대에 복귀하려는 강렬한 소망을 갖게 됐고,
베를리오즈는 작곡, 연구, 평론으로 분망했다. 결혼 2년간은 몽마르뜨에서 함께 살았지
만 활동 무대가 파리 시내였던 베를리오즈는 2년 뒤 시내에 하숙방을 얻었다. 당시 평
론가로도 꽤 유명하고 나름 영향력도 있어서 청탁 때문에 찾아오는 신인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마리 레치오라는 가수가 있었다. 소리도 음악적 재질도 볼품없는 인물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오페라 무대에 서보기 위해 평론가로 유력한 베를리오즈에게 매달린 것이
다. 스미스는 남편이 하숙을 얻는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특히 마리에 대해서
엄청난 질투심을 보였다.

음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아내에 대해 언짢은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마리에 대한
그녀의 격렬한 질투 때문에 더욱 더 아내를 피하다가 결국 마리와 동거에 들어갔다. 유
부남의 이중생활이었다. 남편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아들 루이와 외롭게 살던 헬리엣은
1848년에 뇌일혈로 쓰러져 5년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단지 2년에 그쳤고, 죽기까지 남편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버려진 처지였다. 아내가 죽자
베를리오즈는 슬픔을 가득 담은 편지를 그들의 결혼식 입회인이었던 리스트에게 보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리와 정식으로 결혼했지만 그녀도 48세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
다.

베를리오즈는 헬리엣에게나 마리에게나 같은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헬리엣이 비록 음악
에 관심은 없었다 해도 가정주부로서는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 각종 자료들의 증언이다.
마리 역시 비록 음악에 뛰어난 소질이 없고 엄청난 질투의 화신이긴 했어도 남편에겐
철저한 부덕을 제공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그러나 둘 다 남편의 버림을 받았다. 베를리
오즈는 헬리엣이 아닌 오필리아의 환영으로 첫 아내를, 마리가 아닌 정열적인 스페인의
화신으로 두 번째 아내로 맞았을 터. 음악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도 환상으로 자기류의
색깔을 칠한 것이다. 그러나 환상은 깨지기 마련. 색깔도 어느 땐가는 벗겨지는데 그렇
게 깨지고 벗겨져서 드러나는 실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아내를 외면했다.

1869년 3월 8일. 그는 어렸을 때 짝사랑 했던 연상의 에스텔 포르니에가 자기의 임종
을 지켜주기를 희망했다. 죽음을 맞으면서 조차 그는 환상을 고집했다. 그러나 그의 소
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제자와 몇몇 친구들만이 그의 임종을 지켰다.

◈ 음악 듣기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1830)  
지휘 Mariss Jansons
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
Proms festival 2013, London Royal Albert Hall
http://youtu.be/yK6iAxe0oEc

◈ 사진 / 헬리엣 스미드슨(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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