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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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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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처럼 노래하는 나이팅게일! 김 유 섬

  
--- 그의 콘서트를 기다리며 --

소프라노 김유섬, 부산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또한 최초로 독일 [본] 오페라
극장의 주역 가수로 활약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여성이다. 부산에서 태어났고
줄곧 부산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다. 대학은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를 다녔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어 MBC어린이 합창단에서 노래했고
웬만한 콩쿠르는 죄다 휩쓸었다. 대학에서도 김유섬의 노래는 발군의 재능으
로 돋보였다. 대구에서 열린 전국성악경연대회에서 우승을 따냈다. 당연히 주
목받는 위치에까지 가게 되었다.

김유섬은 부산대학을 졸업한 뒤 유학을 가야 된다는 생각을 했고, 주변 사람들
도 마땅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본인의 여건은 어두웠다. 집안의 경
제 형편으로는 유학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때 몇몇 사람들, 특히 그의 스승인
서경희교수가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스승이 베푼 물심양면의 도움이 끝내 이
탈리아 유학을 가능하게 했다.

1986년, 김유섬은 [롯시니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곧장 콩쿠르와 오페라
오디션에 도전했다. 이러한 도전은 그의 음악적 기량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절실했던 것은 콩쿠르와 오페라 오디션엔 붙
어 있는 돈이 필요했다. 학비와 생활비 조달의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
다. 이러한 도전은 "살아 남기 위한" 절대절명의 몸부림이었을게다. 다행하게
도 재능과 행운이 함께 했다.

이탈리아는 도시마다 오페라 극장과 연주홀이 있고 아울러 각 도시마다 특징
있는 음악제와 콩쿠르를 열고 있다. 이탈리아처럼 콩쿠르와 음악제가 많은 나
라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재능 있는 음악도들에겐 그만큼
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첫 도전은 1986년 9월의 '라보엠 콩쿠르'. 상위 입상자에겐 오페라 출연의 기회
와 상금이 주어지는 콩쿠르였다. 성공했다. '뮤제타'역이 주어졌다. 동양에서
온 애송이 유학생이 대어(大魚)를 낚은 격이다. 출발이 참 좋았다.

그 이후의 콩쿠르와 오디션도 막힘이 없었다. 약 3년에 걸쳐서 [나비부인]의
타이틀롤,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役을 잇달아 노래했고, 1988년 5월엔
[수녀 안젤리카]에서 수녀 '제노베파'역을 맡았는데 여기에서 세계적인 프리
마 돈나 까띠아 리치아렐리(Katia Riccialelli)와 공연하는 영광을 가졌고 한동
안 그녀의 지도를 받는 행운도 누렸다.

끈질긴 콩쿠르 도전은 1988년부터 가속이 붙는다. 그해 7월 [마리오 델 모나
코 콩쿠르, 70여명과 겨룬 끝에 4위에 입상했다. 200만 리라의 상금을 받았고
부상으로 두 번의 콘서트를 가졌다. 같은 해 9월 이탈리아 북부 지방도시 빠도
바(Padova)에서 열린 [이스 아다미 코라뎃찌 콩쿠르]에선 5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 1위에 입상 200만 리라의 상금과 3회의 콘서트를 부상으로 받았
고, 1990년 4월, 빠도바에서 독창회를 여는 보너스도 받았다.

한달 뒤 술모나(Sulmona)에서 열린 {마리아 까닐리아 콩쿠르}, 상금도 높았
고 권위도 꽤 있어서 경쟁이 치열했다. 2위 입상, 상금은 300만 리라, 부상은
10번의 콘서트 출연이었다. 또 한달 뒤, 이번엔 이탈리아에서는 물론 유럽 대
륙을 통틀어 권위를 자랑하는 [푸치니 콩쿠르]에 도전했다. 여기서도 2위 입
상. 400만 리라의 상금도 컸지만, [푸치니아노]라는 명예를 받아 크게 고무됐
다.

이러한 도전과 더불어 유학생활 4년을 지냈고, [롯시니 음악원]과 [오지모 아
카데미아] [만토바 아카데미아]를 졸업했다. 1990년 2월에 뻬루지아의 오페
라 무대에서 [나비부인]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대단한 성과였다.

1990년 11월 21일, 부산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슈베르트의 가곡 [밤과 꿈]으
로 시작됐다. 청중은 이 첫 작품에서 이미 열광했다. 김유섬의 발성 테크닉은
완벽한 경지에 와 있었다. 자신과 확신으로 충일된 발성과 프레이징, 노련미
넘치는 음악성, 윤기 있는 음색, 정확하고 품격 있는 딕션, 어느 곳 하나 빈틈
이 없는 名演을 쏟아 붓고 있었다.

4년의 세월이 그를 그렇게 크게 변화시키고 성장시키고 발전시켜 놓았다. 감동
과 설렘으로 그의 음악회는 진행되었다. 역경을 희망으로 일구어 낸 그의 억척
이 불꽃으로 피어오르는 무대였다. 유학 4년만의 잠시 외출이 이렇다면 앞으로
의 그의 미래는 확고한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객석에 주고 있었다. 그 확신
이 "가까운 사람"들을 오열시킨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김유섬은 [본] 오페
라 극장의 전속 가수로 계약하고 독일로 건너갔다.

10여개의 국제 콩쿠르에서의 입상, 장 피에르 랑팔과의 협연 등 수많은 국제
무대에서의 콘서트, 부산 음악상 수상 등 그의 빛나는 경력이 증명하듯이 이
제 김유섬은 명실상부한 국제적 가수로 변신하였을 뿐 아니라 부산 음악에 또
하나의 희망을 주면서 우리 앞에서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이 무대를 기다리
는 마음은 각별한 것이다.

** 이 글은 김유섬이 유학생활 중 일시 귀국해서 열었던 독창회를 위해서 1990
년 11월에 쓴 것이다. 김유섬은 그후 독일에서의 활동을 접고 귀국하여 한국예
술종합학교 교수를 거쳐서 지금은 창원대학교 음악과 교수와 한국을 대표하
는 솔로이스트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이태리 떼르니의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라보엠으로 데뷔하여 동양의 진
주"라는 호평과 함께 3년 연속 베르디극장에서 라보엠,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
타를 공연하였고 이태리, 스페인과 유고 등 유럽에서 많은 공연을 하였다. 특
히 이태리 또레 델라고의 푸치니 오페라 페스티발 야외무대에서 나비부인 공
연으로 20여분간 관객기립박수를 받았으며, 푸치니 오페라 전문가수로써 오페
라 리골렛또,루치아,라트라비아타,라보엠,수녀 안젤리카등의 주역으로 폭넓
은 음악을 연주하며, 무대예술의 감동을 섬세하고 뜨겁게 연주하는 오페라가
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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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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