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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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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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의환향의 무대, 김성은 독창회!



"이 음악회 최고의 수확이 김성은(金星銀)이다. 더군다나 한 손으로도 꼽기 어
려울 만큼 그 인구가 적은 코로라투라 부문에서 이처럼 뛰어난 테크닉을 갖춘
신인을 우리 고장에서 배출했다는 사실이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무리 없는
중·저음의 발성과 긴 호흡,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카덴자(Cadenza)의 다채로
움, 정확한 딕션(Diction) 등 많은 장점을 갖고있다. 여기에 힘과 릴리시즘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면 그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1987년 가을, 필자가 제 3회 부산신인음악회를 종합적으로 평하면서 소프라노
김성은에 관해서 적은 부산일보 음악평의 한 부분이다.

부산대학교 음악학과를 졸업한 후 1987년, 김성은은 대구에서 열린 '전국성악
콩쿠르'에 도전한다. 대구에서 매년 실시되는 이 콩쿠르는 제 5공화국 당시 정
부에 의해서 계획·실시 된 예술진흥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창설된 것으로 대
통령상 등의 시상과 폭넓은 특혜가 주어지는 전국규모 콩쿠르이다. 부산시가
주최하고 부산문화방송이 주관하고 있는 [부산음악콩쿠르]도 이 경우에 속하
는 것이다. 김성은은 여기에서 대상(大賞)인 대통령상을 획득한다. 첫 번 째 도
전에서 크게 고무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밀라노 베
르디 음악원이 그녀의 미래를 승부하기 위한 도장(道場)으로 선택된다.

1991년 11월, 김성은은 올림픽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던 바르셀로나
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성취(成就)에 도달한다. 1965년에 창설된 [바르셀로나
국제 경연대회]는 유럽에서 열리는 콩쿠르 가운데서도 가장 권위 있는 것의 하
나로 높은 상금과 오페라 출연 부상(副賞)이 주어진다. 총 190명의 젊은이들
이 몰려 왔다. 결과는 김성은의 우승이었다. 1천2백만 리라의 상금과 베르디
의 오페라 '돈 파스콸레'의 타이틀 롤을 맡는 행운이 그녀에게 돌아간 것이다.

김성은의 도전과 성공은 같은 해, '비냐스 콩쿠르' 우승으로 빛을 발한다. 이
콩쿠르는 일찍이 조수미가 우승했던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1년여가 지난 1992년 10월 7일, 김성은은 대어 중의 대어(大魚)를 낚는다. 비옷
티 국제 경연대회의 준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국제 규모의 성악 경연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감격의 입상대에 오른 것이다.이탈리아 출신의 고
전파 작곡가이자 저명한 바이얼리니스트인 밧티스타 비옷티(Viotti, Giovanni
Battista, 1755∼1824)를 기려서 그의 고향인 북부 이탈리아의 베르첼리
(Vercelli)에서 1950년에 창설된 [비옷티 콩쿠르]는 피아노, 성악, 작곡 등 3개
부문에 걸쳐 매년 열린다. 때로는 바이얼린, 첼로, 기타(Guitar), 현악 4중주 가
운데서 1개 부문이 추가되기도 한다. 참가 연령은 35세 미만으로 다른 경연대
회에 비해 비교적 높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 세계 최정상급의 프리마 돈나로
서 활약하고 있는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Mirella Freni)가 이 콩쿠르를 통해
서 발판을 마련했고, 그레이스 호프만, 보날도 자이오티, 게일 질모어, 제인 넬
슨, 마리온 버네트 무어 등 스타급 성악가들이 이 콩쿠르를 통해 배출된 명인
들이다. 김성은이 비옷티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부산 음악
이 거둔 그간의 콩쿠르 수상 가운데 가장 큰 수확일 뿐 아니라 한국 음악계가
거둔 감격적인 수확의 하나로 받아 들여져야 하리라.

1, 2차 예선과 본선을 통해서 최종 입상자를 가려낸 1992년도 비옷티 콩쿠르
는 전세계에서 몰려든 115명의 성악인들의 경쟁 속에서 10월 1일부터 1주간 동
안 계속 되었다. 세미 파이널(Semi-Final)에 진출한 28명중에서 마지막 입상
자들이 선정되었다. 이탈리아인이 우승, 김성은이 준우승으로 발표됐다. 이탈
리아의 텃세가 그토록 드센 콩쿠르에서 일궈낸 준우승은 각별한 의의를 지닌
다. 김성은은 5백만 리라의 상금을 받았고, 기념 음악회에 출연했다.

1995년, 김성은의 이름은 '도밍고 국제 콩쿠르' 우승자로 또 한번 빛을 발한
다. 이 우승으로 이듬 해 스페인 왕실을 위해 열린 신년음악회에 도밍고와 나
란히 한 무대에 서는 행운을 얻었다.

이무렵, 유럽에서 김성은이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모차르트의 '대
관식 미사'와 또 다른 미사의 독창자로 연주하였고, 1993년 2월과 3월엔 파리
와 스페인에서 오페라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김성은의 무대 가운데서도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있는 야외극장에 데뷔하여 베
르디의 질다 역을 노래했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발성의 크기가 이
제는 야외극장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니 그야말로 김성은의 황금시대가 열
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2001년, 김성은은 스페인 방송교향악단과의 협연을 비롯 4편의 오페라 출연과
수믾은 콘서트 무대에 오른다. 낸년엔 아시안게임 개막공연에 참가할 예정이
다.

조수미, 홍혜경, 박선혜, 김영미 등 외국의 저명한 오페라 무대에서 한국 성악
의 재능을 한껏 펼치고 있는 선배들의 대열에 이제 부산의 매력적인 프리마 돈
나 김성은이 그 뒤를 이은 것이다.

소프라노 김성은의 금의환향 무대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 진
다. 부산 음악계가 배출시킨 국제적인 스타가 그리 흔치않은 우리들 사정을 헤
아린다면 오늘 저녁의 이 무대는 더더욱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만남이 되는 것
이다. 그녀의 값진 예술적 성과에 감격의 박수를 보낸다.
                                                

                                                               곽근수  2001년 4월 1일

** 사진 / 김성은(중앙일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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