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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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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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음악의 필요성

  

1990년대 초, 테너 박인수와 대중가요 가수 이동원이 입을 맞춰 노래한 "향
수"가 화제가 되고 대단한인기를 모은바 있었다.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와 존 덴버(John Denver)가 노래해 세계적인 유행을 낳았
던 "Perhaps Love" 못지 않은 대단한 인기였다. 또한 이러한 시도가 우리 음악
계에 몇 가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더 큰 관심이 쏠렸었다.

박인수와 이동원의 노래가 방송에서 소개되자 청취자의 반응은 즉각 엽서 희
망곡의 쇄도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신기하고, 재미있고, 예쁘다"는 반응들이
다. 긍정적인 반응이다. 헌데, 순수음악계에선 논의가 양분됐다. 심지어는 "대
학 교수가 그럴 수 있느냐!"는 비난도 나왔다. 용감하게(?) 음반취입에 나설
때 본인도 물론 이런 반응을 생각했을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는 이 일에 불을
붙여야 할 것이다.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겠는가?"하는 각오도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성악계의 상당수 인사들은 이러한 시도에 대해 못마땅한 생각
들을 갖고 있다. 물론 겉으로 표현은 자제하고 있지만 내심으론 박교수의 용
기 있는 행동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성악가도 없지는 않았을터이고.

우리나라에서 이런 행동이 새삼 화제가 되고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대학교수
가 연주가를 겸하고 있는 우리 음악계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음악시장이
큰 몇몇 외국의 경우처럼 교수와 직업 연주가가 구분되어 있는 경우엔 실제로
문제가 될 사유가 아닌 것이다.

꽤 오랜 세월 "가곡과 아리아의 밤" 형태의 성악 공연이 우리 나라 공연의 큰
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해마다 이런 스타일의 공연은 수없이 무대에 올려졌는
데 정작 성악가들이 연주하고 있는 레퍼토리는 거의 변함없이 한정되어 있었
다. "그 목소리에 그 노래"가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청중이
즐길 수 있는 "레퍼토리의 확대"라는 문제가 제기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공연은 제작비 부담이 꽤 과중한 편이어서 흥행자의 입장에서는 청중
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
었다. 그 결과, 거의 대학교수를 겸하고 있는 우리 성악가들은 무대에서
 "Yesterday"도 "Don't Cry For Me Argentina"도 "잊혀진 계절"도 노래하게 되
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레코드라는 보다 개방적인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떠
난) 매체에까지 교수가 가요를 노래하는 가수로 등장하니 화제가 되고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악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연주기술이 향상하고, 여기에 부
응하는 작곡가들이 점차 깊은 예술성과 고도의 연주기량을 요구하는 작품을
쓰게되자 음악에 있어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계층이 확연하게 구분되기 이전
까지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의 구별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음악사
의 기록이고 증언이다. 13세기의 음유시인들인 뚜루바또레, 민스트렐, 미네징
거의 음악에서 또한 그런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시를 짓고 곡
을 붙이고 직접 노래하고 연주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Sing A Song
Writer"인 셈이다.

이러한 전통은 음악형식이 완비되고 고도의 작곡기술과 고도의 연주기술을 갖
춘 전문적인 음악가들이 출현한 시대에도 어느 정도 계승되고 있었다. 바로크
시대에 크게 유행되었던 "모음곡" 형식이란 것도 실제로는 마을에서 혹은 도시
에서 일반인들이 즐겨 춤추었던 민속춤곡을 모태로 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표
현의 기술은 정제되어 있을지언정 그 알맹이는 지극히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심지어는 예술성이 매우 짙다고 여겨지는 당시의 작품에서 그
무렵 민간 사이에서 크게 유행됐던 대중음악이 거의 원형 그대로 채용되고 있
는 예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모차르트의 작품에서도 같은 예는 있다. 저
유명한 피아노 변주곡 "반짝반짝 빛나는 별"(속칭)도 그 주제는 당시의 유행가
요였던 "어머니, 이 괴로움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를 주제로 삼지 않았는가!

이처럼,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은 한 뿌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예술환경
이 변화하면서, 특히 18세기의 빈(Wien)고전악파 이후 순수음악의 미학적 이
상이 "엄정한 형식미"에 주어지면서부터 이른바 순수와 대중이 확연한 구분으
로 별리의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의 음악환경은 일종의 과거에
의 회귀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한 현상은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생성된
재즈(Jazz)음악이-- 재즈라는 말의 어원은 매우 부정적인 것이어서 일종
의 "타락" "시궁창"에까지 이르고 있다 -- 작곡가들의 새로운 음악재료, 신선
한 음악언어로 채택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라벨, 스트라빈스
키, 드뷔시, 바르톡이 이 작업에 앞장서는 작곡가들이 되었고 그들의 작품은
크게 환영을 받았다. 여기에 미국인들은 런던의 "프라머네이드 콘서트
(Promnade Concert)"를 본 떠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 앙드레 코스테라넷
츠 오케스트라 등을 속속 탄생시키면서 순수와 대중의 손을 맞잡게 했고 여기
에 런던의 만토바니 악단이 가세했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클래식과 대중음악
을 한자리에서 연주했고, 클래식은 유행음악의 스타일로 유행음악은 클래식
의 스타일로 편곡·연주하여 순수와 대중의 접목작업에 뛰어들고 상당한 성과
를 거두게 된다. 아마도 그 대표적 작품이 아서 휘들러(Arthur Fiedler, 1894-
1979)가 어느 책방에서 발견했다는 가데(W. Gade, 1817-1890)의 "질투"가 아
닐까 한다. 가데는 덴마크의 명성 높은 순수음악 작곡가였지만 "질투"라는 작
품은 그 농염한 관능미로 인해 첨단 유행음악 못지 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
아 결과적으로 아서 휘들러와 보스턴 팝스의 음악적 진로를 활짝 예시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1980년대 초,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음악 사상 빛나는 위대한 명
곡들을 파격적인 디스코 리듬으로 편곡·연주하여 "Hooked On Classics" 열병
을 일으킨 사건은 순수와 대중의 크로스오버(Crossover)에 결정적 계기를 마
련했고, 뒤를 이어 전자악기 "무그 신디사이저(Moog Synthesizer)"에 의한 거
의 무한대의 편곡으로 크로스오버 현상은 더욱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성
악계에서도 이러한 붐이 형성되어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듀엣이 등장
하고,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와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가 다투어서 팝을 노래하는 대열에 서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 이 물결이 밀려온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가장 먼저 팝스 콘서트를 열었고 KBS교향악단이 여기에 가세했다. 부산에서
도 1984년에 부산시향으로 하여금 이러한 시류에 합류시키기 위한 몇 번의 노
력이 있었으나 "Hey Jude"같은 외국의 팝은 연주했으면서도 유독 국내가요만
큼은 연주할 수 없다며 버틴 어느 리더로 인해서 실현되지 못한 기록이 있다.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 본다. 대학교수 성악가가 대중가요 가수와 노래한
것이 우리네 상황으로는 일종의 "사건" 이다. 또한 이 "사건"은 순수음악계의
미학기준으로는 집고 넘어가야할 과제인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에게도 "중간음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미국의 작곡가 르로이
앤더슨(L. Anderson)에 의해서 "세미 클래식"이란 용어가 만들어지고 아울러
그러한 "중간음악"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음으로 인해서 1950년대를 전후한 미
국의 시민문화가 얼마나 건강했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네 형편처럼 대학교수와 직업연주가가 확연한 구분을 지을 수 없는 상황
에서 그들이 가져야 할 새로운 예술 몫으로 "중간음악" 활동을 권장하는 문제
도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박인수교수와 이동원씨의 듀엣 송 "향수"를 중간노래로 생각해 볼 수는 없을
까? 만일 이러한 논의에 동의가 가능하다면 보다 많은 중간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순수음악과 대중예술이 이처럼 첨예하
게 양분된 우리의 음악문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대중음악 편향으로 되어 가
는 청소년의 정서생활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L.앤더슨이 발표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대
중문화에 신선한 바람이 되었던 "Waltzing Cat" "Syncopated Clock"같은 근사
한 중간음악이 우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믿음의
시발은 박인수교수와 이동원가수의 노래 만남에서 찾아졌다.

** 이 글을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는 밝혀주시기 바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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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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