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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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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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음악감상회



그 날 하늘은 회색 빛이었다. 중앙동 사옥에서 털털거리는 짚 차를 타고 대연
동 가는 길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그 빛깔이었다. "이러다가 비라도 한바
탕 뿌리는거 아닌가?". 곁에 있던 홍상석 부장이 걱정 어린 투로 하늘을 응시하
기도 했다.

1979년 9월 첫 목요일 오후, 부산문화방송의 '목요음악 감상회'는 이렇게 회색
빛 하늘 아래서 아주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음악으로 아름다운 사회를"이라
는 캐치프레이즈를 펼치고 있던 그 무렵에 홍부장이 중심이 되어 필자와 몇몇
프로듀서들에 의해서 목요음악 감상회가 기획되고, 대연동에 소재한 프랑스
문화원이 장소와 기자재를 제공한 가운데 첫 번째의 감상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 날, 필자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선정했다.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
었는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이었다. 하나는 푸르트벵글러(W.Frutw ngler)의 것으로 또 하나는 당시 애
호가들에게 최고의 우상으로 군림했던 카라얀(H.v.Karajan)의 음반을 감상했
고 해설은 필자가 맡았다. 프랑스 문화원 영사실은 약 150석 정도의 객석이었
는데 그게 다 찼고, 프로그램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주 좋았
다"고 했고 이런 모처럼의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문화방송이 노력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들의 기대처럼 그 후 목요음악감상회는 설날을 제외
한 모든 목요일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와 드디어 1천회라는 감격
적인 기록을 달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많은 음악인들과 음악애호가들이 이 프로그램을 매개로 만나 가장 순수한 언
어들을 나누고 정을 교환하는 가운데 이런 놀라운 기록이 달성된 것이다. 햇수
로는 무려 22개 성상인데 그게 한번의 거름도 없이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면 어
김없이 음악의 언어들을 진설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노력들이고 대단한 호응이
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런 기록은 없다.

그동안 이 감상회에 소개된 소스(source)도 엄청난 변화를 거쳤다. LP로 시작
되어 CD로 발전되고 다시 LD와 DVD로 옮아 다녔다. 1980년대, CD가 처음 소
개됐을 때 오디오 기기 제작사의 협조를 받아 시행했던 데몬스트레이션에서
해설자와 청중들 모두가 신기한 눈빛으로 무지개 빛 CD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바로 어제의 사건인양 생생하고, 프로잭트를 통해서 대형 스크린에 LD영상을
띄우고 흥분했던 기억들도 너무도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목요음악감상회의 또 하나의 강점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국내외의 저명
한 연주자들과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들을 기회가 닿는 데로 초청했다는 사실
이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부산에 최초로 소개되었
고, 프랑스 목관 트리오, 소프라노 신영옥, 첼리스트 조영창, 안 트리오 등이
그들이다. 지금은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최고의 프리마 돈나로 활약하고 있는
소프라노 김성은이 신인으로 이 무대에서 소개된 기억도 생생하다. 바리톤 박
수길이 국내 최초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전곡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직접
해설하며 섰던 무대도 이곳이었다.

목요음악감상회를 위해서 헌신한 무수한 얼굴들이 이 순간 스쳐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부산 가톨릭센터의 식구들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다. 이 감상
회가 가톨릭센터의 개관과 함께 그곳 소극장으로 옮겨가는 바로 그날부터 지
금까지 수고한 이창희선생을 비롯하여 문화부 식구들은 1천회를 맞는 이 순간
가장 영광된 자리에 모셔야할 분들이다. 그들이 말없이 늘 행동으로 담당 프로
듀서들과 호흡을 맞추며 헌신했기에 이러한 기록이 가능했다고 보아도 과언
이 아니다. 가톨릭센터의 이러한 물질적·정신적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러
한 빛나는 성과에 이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목요음악감상회가 전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문화방송의 내부 인
사에 따라 담당 부장이나 담당 PD가 교체되는 일이 잦았는데, 그 가운데 어떤
간부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폐지를 시도했다가 클래
식 음악 옹호세력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꼬리를 내렸던 사건도 있었고, 일부
실무자의 잘못된 기획으로 퀄리티에 흠집이 생기는 일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
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담당자들은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정성
과 노력과 지식을 쏟아 부었고, 그러한 땀의 결실이 1천회라는 자랑스러운 기
록을 남기게 한 것이다.

1천여명에 이르는 해설자들의 헌신과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는 음악 애호가들
의 열성적인 참여, 이 프로그램에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문화방송과 가톨
릭센터의 변함없는 의지, 수많은 협찬 기업들의 쉽지 않은 협조라는 다양한 추
진력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내일을 위한 추스름이 필요한 시기라고 여겨진다. 추스름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수반되기를 바란다. ①지금과 같은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갈 것
인가? ②지금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문제는 없는가? ③형식과 내용에 변화를
준다면 어떤 것에 기준을 둘 것인가? ④초심(初心)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겠는
가?

아주 냉정하게 표현하면 이 프로그램이 1천회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국외자들
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관계자 일부에게는 충분히 흥분할만한 가치가 있는
기록이지만 말이다. 때문에 기록에 연연하지 말자는 제언을 하고 싶은 것이
다. 그보다 중요한 애호가들의 관심은 '내용과 질(質)'에 관련된 것이다. 관계
자들은 여기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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