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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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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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정행의 독창회에 부쳐

  
배정행은 ----

배정행과 처음 만난 것은 1971년 5월 이었다. [FM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에 그
를 출연 시키고자해서 만나게된 것이다. 부산에 내려와서 만난 두번째의 음악
인 이었다. 그무렵의 배정행은 28살의 패기만만한 젊은이 었다. 스튜디오 마이
크를 통해서 들려 온 그의 소리는 험한 벼랑을 향해서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였
다. 놀라운 힘과 감탄할만한 음악성으로 그의 소리는 형성되어 있었다. 적어
도 소리에 관한 한 국내에 그와 필적할 바리톤은 없겠다는 생각을 처음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졌다. 프로듀서로서는 횡재를 했던 셈이다.

이때부터 그와 나는 수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슈베르트의 연
가곡들을 하나 하나씩 녹음하여 약 2년간에 걸쳐서 완창(完唱)한 것은 국내 음
악사에서는 물론 한국 방송사에서도 최초의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슈베
르트의 연가곡 완창 작업은 참으로 보람 찬 성과라고 여겨져서 새삼 뿌듯한 감
회를 갖게 한다.

그와의 인연은 단지 음악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28살 젊은 나이에 만났을 때,
그는 영낙없는'촌놈' 이었다. 예술한다는 녀석이 그렇게 촌티를 풀풀 내서야
어쩌겠냐고 닥달하면서 미주알 고주알 챙겼던 것도 이제와 생각하니 아득한
옛날로 여겨진다. 광복동과 남포동의 그 많은 술집들이 우리들의 순례지였고,
매일 매일 지칠줄 모르고 오고 간 대화는 모조리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 부산
의 음악은 물론이고 한국의 음악, 세계의 음악을 통째로 안주 접시에 올려놓
는 것이 그 시절 우리들의 저녁 일과였다.

지금이야 부산에서만도 년간 300여회의 연주회가 열리고 있지만 그 무렵은 전
혀 사정이 달랐다. 대청장 예식장과 새부산 예식장 등이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었고, 그나마 년간 30여회 정도의 음악회가 열렸던 시절 이었다. 연주가라
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수효도 스무명 남짓이었으니 그때의 부산 음악 사정
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배정행의 음악은 더욱 빛나는 존재였고 우
뚝 선 모습이었던 것이다.

배정행은 음악대학 출신이 아니다. 한국 악단(樂檀)에서 행세하려면 음악대학
간판은 필수적인데 그는 이 간판을 갖고있지 않다. 치명적인 핸디캡이다. 이
런 이유 단 하나로 해서 그는 지금까지도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겪고 있다. 안
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우리네 현실이다. 실력보다도 간판이 더 행세를 해대니
도리가 없다. 그가 지니고 있는 이 핸디캡이 안타까워 몇 번인가 외국 유학을
권한 일이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도 이 권유는 이행되지 못
했다.

그가 음악대학 출신이 아니라며 뒷 구석에서 마구 지꺼려 대던 사람들도 막상
연주회나 오페라를 하려면 그에게 달려온다. 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희한한 동네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배정행의 음악 인생은 그럭저럭 이어
지는 형국이다.

한 때, 배정행은 오페라에 미쳐 있었다. 미친 나머지 [시민 오페라단]이라는
단체도 만들고 단장이란 직함을 갖는다. 창단 공연을 가졌다. 결과는 이미 예
상된 것 이상으로 만신창이의 패배자로 드러났다. 체질적으로 예술가의 기질
을 타고 난 그가 오페라를 '경영(經營)' 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마도 그는 지금도 오페라 빚 청산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상태일 것이
다. "노래나 할 일이지 네가 무슨 오페라 단장을 할꺼냐"고 말렸지만 마이동풍
이었다.

배정행이 오랜만에 독창회를 연다. 음악대학도, 그 흔한 외국 유학도 다녀오
지 않은 성악가가 독창회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음악회는 더 의미가 있다.
수많은 무대에서 그가 노래를 했지만 독창회는 오래간만이다. 연주가들의 프
로필 속에 가득 차 있는 그 흔한 화려한 경력들이 그의 이력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음악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많은 음악인들
이 입고 있는 저 화려한 껍데기를 향해서 돌진할 준비를 했기 때문일까?

50의 연륜을 쌓은 성악가의 독창회. 부산에서 태어나서 부산 이외의 곳을 한번
도 가지 않았던 [Made in Pusan]이 독창회를 여는 것이다. 그는 이 무대를 통
해서 무엇인가 이야기 할 것이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30여년이 넘은 무대
생활이었고, 우여곡절이 많은 50년 인생이었는데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는가? 그래서 그의 독창회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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