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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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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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을 찾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난했었다. 당시 대학 구내식당에서 한 그릇에 15원 하던 국밥
살 돈이 없어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도시락을 얼음 씹듯 삼켜야 했던 학생들이 부지기수였
던 시대였다. 학교 앞 허름한 선술집에 가 보면 한잔에 5원 하는 소주 대폿잔 위쪽 한구석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겨우 숨구멍만한 빈틈을 내어 그곳에 입을 대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
다.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증발하는 알코올 가스를 한동안 열심히 흡입한 뒤 제법 술기운이
오른다 싶으면 그제야 한 모금에 쭉 들이 키고 소금 한쪽 찍어먹고 나가는 중년의 단골도 볼
수 있었던 시대였다.

대학생들이 신은 신발은 대부분 워커라고 부르는 미군 군화였고, 옷은 1천5백원짜리 검정 색
물들인 군복이었다. 학생들이 즐기는 술은 한 되에 30원 하는 막걸리였고 안주는 100원에 열
마리나 구워주는 노가리(말린 생선)가 최고급에 속했다. 명동의 유네스코 옆 골목과 광화문의
국제극장 뒷골목엔 그런 학사주점이 줄을 이었다. 마음씨 좋은 술집 아주머니는 기분 내다 돈
떨어진 학생들이 학생증을 내 밀어도 외상 담보로 선뜻 받아주곤 했던 시대였다.

그 무렵 교수님들의 권위는 대단했지만 어쩌다 술집 골목에서 비틀거리는 제자를 만나게 되면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해서 2차에 동행하는 일들이 많았다. 종로 신신 백화점 건너편의 비어홀
'낭만'이나 명동의 비어홀 '로빈 캐빈'은 교수님들의 주머니가 털리는 제자와의 2찻집으로 애
용되곤 했다. 그런 날은 막걸리에 찌든 목구멍이 때 빼고 광내는 신나는 날이 아닐 수 없었
다. 어쩌다 용케 구한 백조 담배 한 개비 교수님 허락 받고 뒤돌아 앉아 피워 물고 묵직한 생
맥주잔을 들라치면 마치 파리의 물랑루즈에라도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었다.

가난하기는 했으되, 돌이켜보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세월이었다. 부잣집 아들과 가
난뱅이 학생의 차이는 도시락에 계란 반찬이 있고 없고의 정도였지 뭐 별다른 격차를 느낄 수
없었던 시대였다. 학교뿐 아니라 마을에서도 상황은 같았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긴 매일
반이었으니 서로 허물이 없고, 어쩌다 좋은 일에 떡이라도 빚는다 싶으면 이웃집에 돌리는 것
이 먼저였고, 떡을 받은 집에선 빈 그릇 보내는 일없이 반드시 몇 푼이라도 돈을 넣어 보내
십시일반의 정리를 나눴던 것이 그때의 세상사는 모습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김장철이면 한
집에 보통 배추 100포기 이상은 담갔으니 미리 날짜들을 의논해서 김장 품을 나눴고 다른 집
에 품하러 갈 때는 하다못해 소금 한 그릇이라도 들고 갔지 빈손으로 가는 일은 결코 없었다.
비록 가난한 살림이긴 했으되 그렇게 인심만은 부자여서 이웃사촌이란 실감들을 나누며 정겹
게 살던 것이 그 세월이었다.

몇 해 전, 죄수 호송차량에서 탈주한 범인들이(1988년 10월 지강헌 사건) 서울 한복판을 헤집
고 다니고 밤마다 민가에 들어가 가족들을 위협하는 만행을 자행했는데도 이웃들은커녕 바로
옆집에서조차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이 요즘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어떤 노인은 사망한지 열
흘이 넘어서야 발견되는가 하면, 10년을 살아온 이웃들이 옆집 사람 이름도 모르는 것이 지금
의 세월이다. 학생이 스승의 머리를 박박 깎아 밀고, 어제까지 자기를 가르친 선생의 연구실
집기를 끌어내 패대기치거나 불지르는 것도 요즘의 일이지 30년 전의 일은 아니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부럽게 생각했던 일이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이었는데,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수용되는 '노인대학'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불과
20-30년 사이에 우린 이웃을 잃고 외롭게 살고 있다. 그 짧은 세월이 스승과 제자를 떼어놓
았고, 대가족을 해체시켰고, 인정을 송두리째 앗아간 형국이다. 한국 사람처럼 짝짓기 좋아하
는 국민도 드물다고는 하지만 '내 동창''내 고향''내 교회' 따위로 배타적인 편짜기에 너무 골
몰해 있다. 그러다 보니 느닷없이 지역감정이라는 고질병이 자리를 잡기도 했다. 심지어는 조
그마한 직장에서조차 '우리과''우리계'라는 식의 편협한 교류만을 고집하는 게 지금 사람들의
꼬락서니다.

스코틀랜드엔 "친구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이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가난한 자
의 보배'라는 마테를링크의 작품엔 "이웃을 언제나 같은 깊이로 사랑하는 일은 영원을 사랑하
는 일"이라는 표현이 있다. 더 늦기 전에, 더 뼈아픈 후회를 하기 전에 잃어버린 이웃을 찾아
야 하겠다. 나 자신이 더 이상 외롭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이웃을 저렇게 소외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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