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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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Subject  
   오래된 음악 메모 중에서(22)/이념의 벽을 넘어서
  

`인종의 벽, 이념의 벽을 넘는 축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서울올림픽의 문화
예술전은 소련에서 온 3개의 공연단체, 즉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모
스크바 방송합창단, 볼쇼이 발레와 소련 발레 스타에 의해 보다 현실적인 감각
으로 한국 국민에게 다가왔다. 특히 요트와 축구예선 등 올림픽 경기의 분촌
(分村)인 부산의 경우 인종과 이념의 벽을 넘어 바로 시민들의 눈앞에 선 그들
의 예술을 보면서 올림픽이 가져다 준 기적 같은 변화에 충격을 받았다. 개화
기이래 소련의 예술단이 이토록 한꺼번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 공연을 가진 적
이 한번도 없었고, 따라서 한국의 근대 문화사상 최대의 사건이라는 사실이 부
산의 예술애호가들을 흥분 시켰고 그러한 흥분은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
라의 회원권이 발매 즉시 매진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현상은 발레단과 합
창단에서도 같았다.)

한국에 오기직전 우리기자와 만난 지휘자 키타엔코가 "음악가와 예술에 국교
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음악세계엔 진정코 국경이란 없는 것이다" 라고 했듯
이 9월14일과 15일 부산문화회관에서 행해진 그들의 연주는  이데올로기의 장
벽을 거뜬히 허물어버린 감동의 휴먼 드라마였다.

음반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모스크바 필의 음악이 과연 실제의 무
대에서 어떻게 형상화될 것인가? 흔히 얘기되듯 소련의 교향악단이 갖고 있는
슬라브적 기질이란 어떤 것인가? 레닌그라드 필과 더불어 이 악단이 장기로 한
다면 금관악기군의 특성은 과연 어떤 것인가? 그들이 표출하려는 러시아 작품
의 감성은 서방세계의 교향악단의 그것과 어떤 차이를 갖는 것일까? 모스크바
필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과 관심은 끝간데 없을 정도였다. "부산에서 모스크
바 필의 연주를 듣게 되다니...."

14일의 첫 곡목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었다. 협연자는 44세
의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모스크바음악원 출신이고 24살 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인물이다. 전세계를 무대로 삼고 있는 화려한 경
력도 갖고 있다.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엔코가 장신인 탓인지 그의 체구는 작
게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매우 다부진 표정이었고 손이 컸
다. 주지하는 바처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가장 슬라브적이
며 서정적이고 동시에 대단히 피아니스틱한 효과를 발휘하는 인기 있는 협주
곡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모스크바 필에 의해 초연이 됐었고 부산에서 바로
그 전통을 계승한 악단에 의해 듣게 된 것이다. 작품, 독주자, 지휘자, 교향악
단의 혈통이 같은 것이다. 크라이네프의 손에 의해 울리기 시작한 저 유명한
제1악장의 어둡고 장중한 화음과 곧 여기에 덮쳐지는 관현악의 결의에 찬 주제
에서 이미 슬라브 음악의 강한 체취는 연주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연주가 끝난 뒤 음악인 몇 사람이 나눈 얘기이긴 하지만, 이들의 연주가 시작
될 무렵 가능하다면 그간 이리저리 들어왔던 이 악단에 대한 '호감성(好感性)
평가'를 배제시키면서 듣겠다는 단단한 무장을 했지만 1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무장해제를 당한 기분이었다는 얘기다.

어떤 평론가는 이들의 금관 울림을 '맹수의 포효'로 표현했으나, 적어도 라흐
마니노프의 협주곡의 경우 그들은 피아노의 상냥한 대화군(對話群)으로, 혹은
속삭이는 연인의 모습으로 객석을 향했다. 키릴 콘드라신에 의해 서구적 세련
미가 추가됐다는 평가가 아니라 해고 제2악장에서 들려준 더할 나위 없는 서정
성과 정제된 피아니시모의 호흡, 제3악장에서 보여준 압도적 다이네미즘과 일
사블란한 통제력은 가히 경이로운 것이었다.

모스크바 필의 연주는 소련의 교향악단이 대체로 공유한다고 알려져 있는 야
성적 개성과 서정적 감성의 양극단을 가장 극명하게 들려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혼(Horn)과 클라리넷, 바순의 유려한 노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으
로 기억 될 것이다.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는 역시 명성 그대로 였다. 완벽한
테크닉, 악곡이 요구하는 변화에 대응하는 기민한 순발력, 체질화된 세련미로
라흐마니노프의 서정과 격정은 웅대한 감동으로 귀결시키고 있었다.

두 번째 곡목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이다. 이제 키타엔코의 좀더 진
한 음악과 모스크바 필의 컬러는 보다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순간이다. 언제
들어도 몸에 소름을 돋게 하는 작품을 러시아의 언어로 듣게 되는 것이다. 휜
칠한 키, 은회색의 머리, 키타엔코는 첼로와 비올라 사이를 걸어 나왔다.

4악장을 꿰뚫고 있는 '운명의 주제', 클라리넷의 절창으로 객석을 침묵시킨다.
여기에 바순이 옥타브 차이로 가세하여 어둡고 애수에 젖은 운명을 더 짙게 착
색한다. 적절한 비브라토를 담은 바순의 노래는 일찍이 들어본 일이 없는 초절
적 기교를 바탕 삼고 있었다. 첼로와 비올라의 안정되고 유려한 울림은 바이얼
린군과의 균형을 멋지게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키타엔코의 사인에 의해 절도
있게 움직이는 앙상블의 이동은 크레믈린궁 앞의 사열식을 연상시키는 극도
로 계산되고 훈련된 박절감이었다. 키타엔코의 지휘는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
는 광폭하게, 때로는 무심히, 냇물이 순리로 흐르듯 음악의 흐름과 변화를 지
극히 자연스럽게 지켜가고 있었다.

제2악장에서 혼(Horn)이 보여준 감미롭고도 정화된 감성과 테크닉 역시 우리
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악장 말미의 금관악기군의 용트림을 지나 제3악장
의 환상적 유희에서도 모스크바 필의 표현의 폭과 깊이는 그 정도를 더해 갔
다. 제4악장에서 드디어 '맹수의 포효' 같다는 금관의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했
다. 전 악기의 총주를 뚫고 나오는 금관의 포효는 다른 악기의 숨을 끊을 기세
다. 도무지 절제가 없다. 트럼펫은 벰을 수직으로 올리고 포르테의 운명을 고
함친다.

모스크바 필의 연주는 소련의 교향악단이 대체로 공유한다고 알려져 있는 야
성적 개성과 서정적 감성의 양극단을 극명하게 들려주고 보여주었다. 아울러
그들의 표현적 기질이 지금껏 알려지듯 슬라브적 토양에서 만족하지 않고 다
분히 서구적 취향도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려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지휘
자의 음악적 역량이 오케스트라의 개성과 질을 결정하는 직접적 요인이라는
교훈이 재확인 된 연주회였다.

모스크바 필의 부산연주회는 특히 이 지역음악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자
극이었다. 아울러, 상임지휘자를 잃고 표류하는 부산시립교향악단이 과연 어
떤 처방으로 회생해야 되는가 라는 현실적 문제에 확실하고도 분명한 해답을
주는 계기를 주었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의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다"는 괴테의 말처럼 모스크바 필의 부산
공연은 예술만이 갖는 위대한 선(善)의 경험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넘어 서
로 손잡는 감동의 결합을 이룩해 냈다. 그들이 들려준 기쁨의 음악과 기립박수
로 응대한 객석의 메시지야말로'음악은 세계의 공통어' 라는 말을 실증해 보여
준 휴먼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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