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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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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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감상,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에서 오랫동안 음악(대체로 악기)을 공부한 학생들이 서양음악의 본고장
이랄 수 있는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혹은 미국으로 유학 가서 제일 먼
저 부딪치는 당혹감은 그곳 학생들의 테크닉 수준이 의외로 평범하다는 사실
이라고 한다. "굉장"할 줄 알고 갔는데 막상 알고 보니 "별것 아닌"것이라는데
대해 당황하는 것이다.

일본의 음악가들은 일본 학생들이 외국유학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뮌헨 콩쿠르]에서 우
승을 획득한 일본 음악학도가 그들의 국내 콩쿠르에서는 맥을 못 춘 경우도 있
었으니 그런 주장이 꽤 설득력을 갖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음악계는 여전히 서양사람들에 의해서 리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동양 출신의 음악가로서 보스턴 심포니의 오
자와 세이지가 있고, 바이얼린의 정경화가 있고, 바스티유 오페라의 정명훈,
피아니스트 우찌다 미츠코, 첼로의 요요마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
된 엘리트에 불과하며 그 수효 또한 서양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양음악
이 바로 그들의 것이니 당연하지 않겠냐는 당연한 논리도 있겠지만 그것은 지
나친 당위론 같아서 설득력이 부족하고, 뭔가 어떤 이유가 있을 것같은 생각
이 든다.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 것 같다. 동양인은
너무 심각하고, 너무 현재에만 집착한다는 이유이다.

"그런 네 실력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지적을 서슴치 않고 내밷는 사람들이 많
다. "내가 지금 이 만큼밖에 안되니 난 글렀다"고 짐짓 포기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
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둘지 않을뿐더러 현재의 다소 뒤떨어진 자신의 음악적
내용에 대해 경직되거나 심각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음악교육이 지나치게 굳어져 있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에 다소 개선되고
는 있지만 여전히 틀에 박힌 교육과정이 되풀이 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
에 유럽의 꼬마들은 음악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 어
린이들은 지겨운 대상이 되기가 쉽다.

연주가로 대성한 서양의 음악가들은 자신이 음악가라는 사실에 대해 "축복"이
라고 느끼고 있는데 비해, 우리 나라 출신으로 현재 국제적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어느 여류 피아니스트는 "때때로 원망스럽고" 자기에게 피아노 연습을 강
요한 어머니가 "원수처럼 느껴진다"고 이야기 한다. 이 얼마나 심각한 인식의
차이인가?

외국 땅에 처음 떨어져서 그곳 본토박이들이 한심하다고 느꼈던 우리 유학생
은 불과 1년도 가지 못해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하고 뒤늦은 깨우침을 갖는
다고 한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제또래의 그 토박이가 놀랄 만큼 유연하
게 실력 향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을 캐어가다보니 자기는 늘 음악
에 대해 심각하기만 했는데 토박이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된 것
이다. 자기와 그들의 차이는 경직성과 유연성이라는 극단의 간격이었던 것이
다. 그들은 늘 마음을 비워두고 음악을 공부했지만, 우리는 늘 "어디 두고보
자!"하고 늘 중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을 감상하는데도 이러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음악을 "앎의 대상"으로 생
각하는데, 그들은 "즐거움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자!"하고 엄숙히 시작하지만 그네들은 음악은 늘 곁에 있는 존재다. 음악감
상에 있어서도 우리가 가장 먼저 준비해야할 환경은 "마음을 비우는"작업이
다. 그래야만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고 비로소 음악이 우리에게 영접될 수 있게
된다. "지금부터 나는 음악을 듣는다"는 자세는 곤란하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일단 지휘봉을 들어 단원들에게 연주에 대
한 예비를 하도록 했으면 즉시 연주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게 되면 단원
에게 불필요한 긴장을 갖게 하여 결과적으로 좋은 출발을 방해하게 된다. 음악
감상도 같은 이치로 생각하자. 음악을 듣기 전에 이리저리 예비하는 일이 많아
지면 감상의 효과는 반감되기 십상이다.

음악을 즐기는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지극히 단순한 작품으로부터 출발하여 점
차 진보된 수준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원칙을 잊지 말도록 해야한다. 그리
고  음악과 함께 할 때엔 마음을 비워두어야 한다. 물론, 집중하지 말라는 주문
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비워둘 때 집중력은 충분히 배가된다는 사실에 주목
하도록 하자. 음악이 들려올때 그 선율을 따라서 노래하고 흥얼거리고 휘파람
을 불고 발이나 손장단을 맞추고 지휘 흉내를 낼 수 있을 때 그것이 가장 자연
스러운 반응이다. 아주 쉽고 작은 작품에서 이런 반응을 일으켰던 사람은 상당
한 통찰력과 인내가 필요한 대곡에서도 같은 희망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
떤 사람은 이런 과정이 쉽게 오지만, 또 어떤 이는 훈련과 반복적인 연습을 통
해서 얻게 되니 이 또한 예술이다. 곧, 감상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베를리오즈의 大作인 [레퀴엠] 중 [진노의 날]에서 금관악기를 포효를 들으면
서 어떤 사람은 새삼스레 솟아오르는 활력을 느끼고, 어떤 이는 최후심판의 공
포를 알아차리게 될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은 화려한 왕궁의 제전을 연상할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금관악기군의 경천지동 할만한 음향을 통해서 하느님의 최후심
판을 의도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서 반응은 이렇게 백양백태, 각양각색이다.
이것이 곧 음악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며 감상의 즐거움인 것이다. 그러
나 여기서 한가지 매우 중요한 전제가 붙는다. 미국식 축구를 모델로 정하고
생각해보자. 미식 축구의 경기규칙을 모르는 사람은 미국인들이 해마다 "수퍼
볼"에 열광하는 까닭을 알 수 없다. 볼을 가진 선수는 늘 엎어지기만 하고 걸핏
하면 머리를 처박고 스크럼 짜기를 해대니 싱겁기 짝이 없는 경기일 뿐이다.
그러나 미식 축구의 룰을 이해하고 경기를 관전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음악감상도 같은 이치이다. 음악은 감각만으로는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음
악은 지각으로 들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 저런 화려한 화음이 만들어지는 것
일까?" "소나타란 과연 무엇인가?" "피아노의 음역은 어느 정도나 되는가?"등
의 궁금증 정도는 구체적인 지식으로선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음악 사
학자 조셉 메클리스는 "예술은 사랑과 같이 정의하기보다는 경험하는 편이 쉽
다"고 말하고 있다.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다. 어떤 예술작품이든 간에 그것은
예술과 개인의 견해와 경험을 표현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품을 이해하
고 느끼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만들도록 한 예술가의 견해와 경험의 세
계에 들어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감상자는 예술가가 사용한 언어와
그가 겪은 경험의 언어를 체득할 수 있는 열쇠를 가져야 한다. 컴퓨터를 다루
기 위해서 컴퓨터 언어를 알아야 하듯. 그 열쇠는 음악예술의 제반 이론인 것
이다. 음악이 "즐거움의 대상"이 되려면 즐거움의 비밀을 여는 열쇠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감상의 전제 조건이다.

* 노래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선율, 화성, 리듬이라고 하지만 이들 요소들이
빠짐없이 들어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간편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성악. 그 중
에서도 [노래]라고 할 것이다. 노래는 우리 육체를 통해서 울려 나오고, 때문
에 노래는 가장 큰 친화력을 갖고있다. 음악은 인간존재의 시발로부터 동시에
있었다는 학설이 있지만, 억양설(남녀노소의 음고,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
서 발생하는 상이한 억양이 음악을 생성케 했다는 학설)을 상기해보면 인간 최
초의 음악이 노래였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은 문명이 고도화된 사회
에서도 가장 초보적인 음악활동이 노래라는 사실을 상기해도 틀림이 없다.

음악감상의 초보자가 가장 쉽게 빈 가슴에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도 [노래]일
것이다. 노래는 다시 민요, 예술가곡, 합창, 오페라, 종교음악 등으로 세분화되
고 이는 다시 시대에 따라서 작품의 양식이 더욱 세분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습득이 있어야 한다.

(1)민요
우리민요 [아리랑]은 언제 어느 때 들어도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위력을 갖고
있다. 이것이 민요의 매력이다. 민요는 일정한 종족이나 민족, 혹은 지역, 국가
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어 구전되어온 특성을 갖고있고, 때문에 민요의
거의가 작사. 작곡자를 알 수 없다. 또한 악보가 아닌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민요는 典型이 없다. 일정하게 통일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다. 그 대신 민요는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어서 두도막, 혹은 세도막 형
식, 가요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특성이 곧 민요의 매력이기도
해 많은 작곡가들이 그들의 작품의 주제나 동기도 채용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 드보르작의<신세계에서>, 시벨리우스의<핀란디아>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민요는 그것이 배태되고 태어난 토양에 따라서 제각기 독특한 민속적
특질을 갖고있기 때문에 적어도 개개의 "민요권"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만 이해가 가능한 제약이 붙는다. 특히, 민요나 민속무곡을 주요한 음악적 재
료로 채택한 작품을 감상하는 경우, 그 작품이 이용한 민요를 먼저 파악할 필
요가 있을 것이다. 리스트가 쓴 일련의<헝가리언 라프소디>는 "챠르다시
(Czardas)"라는 헝가리 민속무곡을 모르고선 이해될 수 없는 작품인 것이다.

민요에 대한 광범한 지식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예술작품(특히 국민주의악파들
의 작품)을 보다 친밀하게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의 작품들은 민요(민속무곡)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는 좋은 예가 되리라
믿는다.

o 브람스 / 헝가리 무곡
o 드보르작 / 슬라브 무곡
o 리스트 / 헝가리 광시곡들
o 드보르작 / 교향곡 제9번 <신세계에서>
o 스메타나 / 교향시곡집 <나의 조국>
o 시벨리우스 / <핀란디아> <투오넬라의 백조>
o 바르톡 / <6개의 루마니아 민속무곡>
o 그리그 / <서정 모음곡> <페르귄트 모음곡>
o 빌라-로보스 / 브라질 풍의 바하

o 본 윌리엄스 / <푸른 옷소매 환상곡> <교향곡 제2번, 런던>
o 코다이 / <하리 야노스>모음곡
o 블로흐 / <셀로모>
o 에네스코 / <루마니아 라프소디>
o 림스키 콜사코프 / <러시아의 부활절>서곡
o 차이코프스키 / <안단테 칸타빌레> <1812년 서곡>
o 파야 / <사랑은 마술사> <삼각모자>
o 샤브리에 / <에스파냐>
o 라벨 / <볼레로>

다음에 열거한 음악들은 레코드로 만들어진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들이다. 시
간이 주어지고 성의가 있다면 이들 민요들은 몇 개의 녹음 테이프에 나라 별
로 편집. 녹음하여 기회 있을 때 늘 곁에 두고 듣기를 권한다.
   o 세계의 민요들
영국
    둘만의 세계, 등대지기, 오슬로 왈츠, 앤니 로리
    밀밭에서, 송년가, 알마그에서 온 소년,
    아! 목동아, 아일랜드의 방랑자, 몰리 마론(Molly Malone)
    푸른 옷소매, 여름의 마지막 장미(한 떨기 장미꽃)
이탈리아
    산타 루치아, 돌아 오라 소렌토로, 마리아 마리
    오 나의 태양, 후니쿨리 후니쿨라, 먼 산타 루치아
독일
    잘 있거라 내 고향, 로렐라이, 들장미
미국
    콜로라도의 달, 산골짜기의 등불, 언덕 위의 집
    흑인영가 / 깊은 江, 나는 때때로 고아처럼 느낀다.
               가라! 모세, 내가 겪은 고통 아무도 모르네
               고요히 흔들려라 하늘의 마차여(Swing Low, Sweet Chariot)
러시아
    트로이카, 붉은 사라판, 스텐카라진
    볼가강의 뱃노래, 오 넓은 들판이여, 종소리는 단조롭게 울리네
    석양의 종, 일의 노래
프랑스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
    이 고민 누구에게 말할까?
    말보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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