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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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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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음악메모(25) / 1990년의 부산음악


작년 한해, 부산에서 열린 음악회는 198회에 달한다. 이 통계는 문화회관, 시
민회관, 경성대 콘서트 홀에서 개최된 음악회를 집계한 것이다. 따라서 KBS
홀, 가은 아트 홀, 카톨릭 센터 소극장, 그 밖의 소규모 공연장 및 교회에서 열
린 음악회는 통계에서 제외됐다.  양적측면 만 갖고서 본다면 평년작은 되는
숫자인 셈이다. 한편, 질적 평가에 부딪치게 되면 형편은 달라진다. 물론 1970
년대, 혹은 1980년대 전반기의 상황과 대비시킨다면 질적 향상이 이루어진 것
은 분명하겠으나, 그것이 소수의 연주자나 그룹에 거의 한정된 향상이라는 사
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한된 지면에 음악의 전 분야를 가늠키 어려우니 편의상 여기에선 성악연주
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 부문과 기악연주의 일반적 상황일수 있는 실내
악과 교향악단 부문 등 3개 분야로 대별하여 전반적 현황과 문제점을 열거함으
로서 그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오페라 부문
올해 부산에서 상연된 오페라는 모두 6작품이며, 공연 일수는 15일간. 공연을
주최한 단체는 3개로 집계된다.

[부산소극장 오페라단](대표/이창균)은 4월 7일-10일, 12월 7일-10일, 두 번
의 무대를 갖고 <까발렐리아 루스티까나>(마스카니), <팔리아치>(레온카발
로), <아말과 크리스마스의 밤>(메놋티), <델루죠 아저씨>(파랏티에리)등 4
개의 공연을 가져온 [나토얀 오페라단](대표/박두루)은 창설 10주년 기념공연
으로 <나비부인>(푸치니作)을 무대에 올렸고, 재부대학으로는 최초로 부산대
학교 음악과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상연했다. 단순한 인구 대비로는 설득력
이 없겠으나, 서울이 올 해에 도합 70여 일의 오페라 공연을 했는데 비해 너무
도 저조한 공연 실적이긴 하지만 그나마 오페라 공연에 맥이 끊어지지 않았다
는 사실만 갖고도 자위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마디로, 부산은 오페라를 상연할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데도 이만큼의 성과라도 거두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오페라는 종합예술
이다. 따라서 어떠한 분야라도 준비나 훈련이 되어있지 못하다면 제대로 된 공
연이랄 수 없다. 공연장은 그나마 문화회관이 개관됨으로써 아쉬운 대로 해결
된 상태다. 비록 오페라 가수로서의 전문적 훈련은 받지 않았으나 역량 있는
가수도 어느 만큼은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더 많은 타 분야는 거의 완벽한 황
무지나 다름없다. 전문 연출가, 세트 디자이너, 무대감독, 메이크업 전문가, 의
상 전문가, 조명 연출자, 연기 연출가 등 어느 분야에도 전문가는 없다. 게다
가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도 수준 급의 상설 단체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해마다 오페라는 막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민간 오페라의 경제적 영세성이 또 하나의
큰 장애로 등장한다.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되는 이 작업임에도 단장들은 모두
영세하고, 그렇다고 이들을 후원하는 힘있는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
가 민간 오페라단의 조직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비지
니스가 비능률적이고 비효율적이다.

한편, 대학이 오페라 전문인력을 배출 시켜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임이든 강사든 대학에 오페라 전문가의 강좌는 전무하다. 결과적으로 해마
다 막이 오르는 무대 위엔 극히 일부의 전문가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캐스트
와 스텝들은 비전문가들로 메워진다. 따라서 예술적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해야 한다.

교육의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오페라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
채택되고, 전문 교육자를 초빙하는 교육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해
결이 없는 한 우리의 오페라는 설 곳이 없게 된다.

또한, 오페라는 경영이다. 오페라와 비지니스를 동시에 컨트롤하는 전문 조직
이 있어야 한다. 고도의 오페라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범사회적,
범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방자치제를 눈앞에 둔 현 시점에서 [시립
오페라단]의 설립 문제는 필연으로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청중은 더 이상 희
극도 비극도 아닌 이상한 오페라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2. 실내악 부문
부산의 4년제 대학에 설치된 6개 음악학과에서 해마다 배출되는 전문인력은
이제 대단한 숫자에 달한다. 그런데, 그들이 갈 곳이 거의 없다. 단 하나의 시
향, 바늘구멍 같은 중고교의 음악교사자리는 이미 기득권 세력이 포진해 있
다. 때문에 실내악은 붐을 이룰 수밖에 없다. 이들 소규모의 집단이 계속 증가
하는 것은 "전문인력의 수용처"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떠한
음악적 분석도 이 보다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 같다.

80年代, 부산에서 6개의 실내악단이 탄생했다. [부산 트리오(1984년 창단)][부
산 신포니에타(1989년 창단)][뮤즈 앙상블(1989년 창단)][부산 필하모니 챔버
(1989년 창단)][부산 까메라타(1989년 창단)][부산여성 실내악단(1989년 창
단)]등이다. 부산 트리오는 30대와 40대의 중견 연주가들(한명희, 김영희, 고
재용)로 구성되어 국내와 해외에서 20여 회의 연주회를 펼쳐 그들의 견실한 앙
상블 능력을 과시한 그룹이다. 이들은 올 한해만해도 국내외에서 10여 회의 콘
서트 투어를 가질 만큼 탄탄한 자리를 잡아 부산 실내악의 견인차 역할을 하
고 있다.

김영희(바이얼린, 부산대 교수)를 리더로 하는 부산 신포니에타는 전형적인 스
트링 앙상블의 조직을 갖추고 정기적인 연주회를 갖고 있으며, 이들 역시 이
지역 현악 합주 운동의 희망적 존재로 인식 받고 있다.

한편, 연주가들로 구성된 뮤즈 앙상블은 젊은 연주가들로 구성된 뮤즈 앙상블
은 [가은 예술회]라는 민간 매니저의 후원을 업고 발족 이후 활발한 연주 활동
을 펼치고 있다. 특히 뮤즈 앙상블은 다중의 연주자를 확보하여 필요와 상황
에 따라 피아노 트리오, 윈드 앙상블, 듀오 등 다양한 분야로 팀을 이룰 수 있
는 다양성을 갖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산 아카데미(대표/정인호)는 관악 부
문에 비중을 둔 조직을, 부산 까메라타(대표/백원석)는 쳄발로를 가담시켜 본
격적인 바로크 사운드의 실험에 나서는 등 각 실내악단의 면면은 저마다의 개
성으로 치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내악의 역사가 짧고 활동의 켜가 엷어 예술적 성숙도에선 아직도 기
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일 것이며, 실내 합주단의 경우, 레퍼
토리에 따른 오리지널 악기의 확보, 실내악단 구성(악기구성)의 다양화, 구성
원들의 기량의 평준화, 연주 횟수의 증가, 레퍼토리의 확대, 새로운 연주 기법
의 신속한 도입, 한국 작곡가의 작품 소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궁극적으로 실내악의 발전과 흥성은 보다 많은 전문인력을 수용할 뿐 아니라
전체 기악 음악의 균형적 발전의 터전이 된다는 점에서 작금의 실내악 붐은 대
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3. 교향악 부문
[계기]란 참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하게된다. 계기는 어느
때나 오는 것도 아닐 뿐 더러, 혹 찾아 왔을 경우에도 그것을 놓쳐서 아쉬웠던
일이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부산시립교향악단이 계기를 잘 잡고 잘 활용해
서 지금 한창 비약의 날개 짓을 하고 있다.

1988년 6월 재부 음악전공 학생들과 시향의 일부 단원들이 당시의 상임지휘자
박종혁의 퇴진을 요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1981년의 악몽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도 단원들과 지휘자의 갈등이 자력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해 끝내
시향 해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박종혁은 선뜻 사임서
를 던졌고, 그래서 파국은 면할 수 있었다. 시향은 이를 계기로 삼았고 그 결
과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국내 오케스트라로서는 최초로 소련 출신의 신예
지휘자 마크 고렌슈타인(Mark Gorenstein,44세)을 제5대 상임지휘자로 맞았
다.

소련 오뎃사 태생의 고렌슈타인은 영재 음악학교에서 바이얼린을 배우고, 기
시네브음악원을 거쳐 키스네바 오페라 관현악단, 볼쇼이 극장 관현악단의 주
자를 지냈고, 모스크바 아카데미 심포니의 수석주자로 있을 때 예프게니 스바
틀라노프에게 지휘법을 사사했다. 198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M.A.V 오케스
트라의 지휘자로 취임하였고 그 동안 레닌그라드. 필, 모스크바 아카데미 관현
악단 등을 지휘하여 "가장 뛰어난 젊은 지휘자"라는 찬사를 받은 인물이다.

고렌슈타인은 1989년 4월에 부산시향을 객원지휘하여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인
정받았고 상임지휘자로 임명된 이후 이미 세차례나 시향을 지휘했다. 그리고
일부 신입단원도 선정됐다. 일단 새로운 진용은 갖춰진 셈이다.

그러나, 부산시향의 내일은 매양 밝은 것만은 아니다. 첫째, 신임 지휘자의 의
욕과 단원들의 의욕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 지난 해 11월 24일과 30일에 있었
던 마크 고렌슈타인과 시향의 연주는 지나친 과욕이 빚은 불균형의 샘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1년 반을 지휘자 없이 지냈던 시향이 어느 날 갑자기 고
도의 수준으로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시향의 관 편성 확대는 빠를수록 바람직하다. 현재의 3관 체제로는 어쩔
수 없이 레퍼토리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레퍼토리의 제한은 동시에 앙상
블 수준의 제한을 낳기 십상인 것이다.

셋째, 악기의 대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현안문제이다.

넷째, 시향의 기획은 보다 전문적이고 보다 자율적인 기능에 맡겨져야 할 것이
다. 현재와 같은 관 주도의 시향 경영은 양질의 음악 생산에 장애요인이 될 위
험을 안고있다. 따라서 문화회관의 법인화를 고려해야 되리라는 생각이다. 부
산시향은 부산음악의 구심점인 동시에 부산음악의 총체이며, 부산시민의 문화
적 자존심의 실제적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음악인과 시의 협력은 물론이거
니와 시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와 애정이 필요하리라.

                                       1991년 1월 {목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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