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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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Subject  
   韓.日 大衆音樂의 어제와 오늘
  
** 잘못 뿌려진 씨앗

2000년,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의 본격적인 개방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에 맞춰서 그간의 韓·日 두 나라를 연결 지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제반 현
상들이 재조명되는 많은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고, 같은 맥락에서 두 나라 사이
의 매우 민감한 문화적 이슈가 되고 있는 대중음악의 문제점들도 관계 전문가
들에 의해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대중문화란 본시 고급문화에 비해 그것을 수용하는 인구의 폭도 넓을 뿐 아니
라 그것이 관련 국가에 끼치는 영향도 지대하기 때문에 한일 문화교류에 있어
서 가장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55년이 지난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대중문화, 특
히 대중음악에 나타나고 있는 일본의 영향은 심히 우려될 만큼 그 뿌리가 깊
게 내려진 것임을 발견케 된다. 필자는 그간에 논의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연구
되어야할 '한국의 대중음악에 잔존해 있는 일본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서 몇
가지 현실적 문제점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확고한 국민적·자주적 문화의식을
지향할 수 있는 지혜로운 개선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1. 우리가요 초창기 작품에 나타난 倭色의 영향
한국에서 인쇄된 최초의 서양악보는 1893년 선교사 언더우드가 발행한 찬송가
였으며 이것이 우리나라 서양음악의 첫출발이 되는 셈이다. 이어서 1910년 대
한제국 학부(學部, 문교부)에서 [학부창가집]을 펴냈는데 여기에 수록된 창가
는 일본의 소학교 창가독본을 거의 그대로 옮겨온 것이었다. 또한 1915년에 출
판된 [통속창가집]엔 일본노래 '자연의 미''후지산'같은 것이 그대로 실리기
도 했으며, 저 유명한 '학도가'도 1900년에 만들어진 일본의 '철도의 노래' 가
락과 동일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풍진 세상..."으로 시작되는 '희망
가'도 '새하얀 후지산맥'이라는 일본노래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고, 1920년을
전후한 만주지방의 우리 독립군들이 노래했던  군가들 중에도 일본의 창가 가
락 혹은 일본군 군가 가락에 가사만 바꾼 것이 많았었다. 그런가하면 1924년
이후 당대의 명기·명창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레코드 취입을 하기 시작하는데
원곡(原曲)이 한국인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취입을 위한 편곡은 대부분 일본인
들이 맡았기 때문에 결국 일본냄새가 물씬 나는 반주음악이 되고 말았고, 그렇
게 만들어진 레코드가 우리 나라에 다시 들어와 장안의 인기를 끌었으니 결국
일본색의 노래를 즐긴 셈이었다.

1930년부터 상업적인 대중가요는 점차 일본적인 색채, 즉 왜색으로 경도되기
시작된다. 일본인이 만든 노래가 히트하면 곧 한국어로 번역하여 부르는 인기
가수들이 속출했으며, 한국어 가사에 일본인이 곡을 붙이는가 하면 한국에서
히트한 노래가 일본어로  번역돼 노래되곤 했으니 한국과 일본의 가요는 점차
동질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33년부터 일본에서 엥까(演歌)
의 검열이 시작돼 당시의 시국을 풍자하거나 비판할 수 없게 되자 유행가의 조
류는 남녀간의 사랑· 이별·눈물 등 비탄적이고 애수적인 성격으로 변질되기 시
작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요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게 되니 이른바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조(調)의 미야꼬부시 음계의 노래가 이 땅에서 판을 치게 됐
던 것이다.

2. 학자들이 퇴폐적 음계로 규정하고 있는 일본의 미야꼬부시(都節)음계란 무
엇인가?

작곡가 나운영은 "일본이 미야꼬부시 음계를 한국에 퍼뜨린 이유는 한국의 고
유음계를 말살시키고 염세적 노래를 통해서 민족혼을 파괴시키려는 정책에서
찿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음계는 세계의 어떤 민족에서도 발견할 수 없
는 세계에서 유일한 퇴폐적 음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야꼬부시 음계는 미·
파·라·시·도로서 두 개의 반음(미-파, 시-도)을 갖는 5음 음계이며 선율 진행이
上行일 경우 미·파·라·시·레·미, 下行일 경우 미·도·시·라·파·미로 쓰여지고 일반
적으로 下行음계가 많이 이용된다. 문제가 되는 퇴폐적인 음계의 정체인 것이
다. 이 음계를 사용해서 곡을 만드는 한 어떤 선율을 쓰더라도 일본냄새를 감
출 방법이 없어지고 만다.

한편, 황병기(이화여대 교수)는 일본인들이 서양의 7음계를 수입하여 일본 고
유음계와 흡사하게 만든 음계가 있는데 그것을 '요나누끼 음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명치시대에 서양음계가 일본에 수입됐을 때 장음계의 계명
을 히(도)·후(레)·미(미)·요(파)·이(솔)·무(라)·나(시)라고 불렀는데 이중에서 제
4음 요(파)와 제 7음 나(시)를 누끼, 즉 뺀 음계이기 때문에 요나누끼 음계라
는 것이다. 요나누끼 음계는 결국 일본의 전통적인 律音階및 민요음계와 긴밀
한 관계를 갖도록 서양의 음계를 변화시킨 것인데 여기에도 장음계와 단음계
가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일본적 음계는 1930년대부터 게이샤(藝者) 출신의 가수들이
등장하여 일본적 창법과 장식음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대중 속에 뿌리
를 내리기 시작하고 때마침 고가 마사오라는 재주있는 작곡가가 등장하여 일
본은 물론 한국에까지 강한 영향을 끼쳤고 특히 그가 27세에 발표한 '술은 눈
물인가 한숨인가'는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이른바 '고가마사오조'의 유
행가를 퍼지게 했다. 물론 당시의 국내 작곡가들도 다투어서 그를 모방하기 시
작하니 우라가요에서 한국의 혼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열이었다.

3. 우리 가요에 들어있는 일본적 음계의 실체.
고가마사오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의 9마디 기타 전주곡에 연이어서 우리
가요 '애수의 소야곡'을 노래해보면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바로 이
러한 점에서 과거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유행가의 많은 곡들과 해방 후 작곡한
상당한 곡에서 한국적인 음악요소 보다는 일본적인 음악색깔을 발견할 수밖
에 없으니 우리가요 속에 들어있는 일본음계와의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해방 후 모든 분야에서 일제의 흔적을 없애려는 노력이 기울여졌으나 유독 대
중가요만은 왜색조가 상당한 힘을 지녀왔고 그 결과 아직도 일부 대중음악인
들은 그것이 한국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40-50대 이상의 한국인들이 왜색가요에 대한 높은 취향을 갖고 있
는데 비해서 젊은 세대는 왜색가요를 경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상당
수 왜색취향 히트곡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로부터 유행되기 시
작한 것은 가볍게 지나쳐버릴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에 미국의 유행음악이
상륙한 것을 계기로 우리가요가 많은 탈바꿈을 해온 것도 사실이나 적어도 히
트곡들 중 상당한 양을 왜색적가요가 차지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
을 것이다. 미야꼬부시 음계와 요나누끼 음계가 일본인의 입장에서 일본혼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음계인데 그러한 음계를 우리 작곡가들이 비판 없이 쓴
다는 것은 분명 크게 잘못된 현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찌보면 '문화의 식
민지적 답습'이라는 비판도 가능한 것이다..

4. 엥까(演歌)시비의 이모저모
1976년에 가수 이성애가 한국 가요 6곡을 일본어로 취입해 일본시장에 내놨는
데 그때 일본 레코드메이커가 이성애의 LP를 소개한 캐치프레이즈가 "엥까의
원류를 찾다. 열창 이성애!"였다. 이러한 캐치프레이즈를 고안한 일본의 음악
전문지 [뮤직 라보]의 주간 오카노 벤은 엥까의 원류가 한국이라는 논리를 다
음과 같이 펴고 있다. "....일본 가요사의 측면을 살펴볼 때 일본 노래의 근원
인 엥까의 계보 자체엔 한국의 멜로디가 깊이 투영돼 있다..... 일본 노래의 역
사 가운데 명확하게 한 방향을 제시했으며 많은 작품을 남긴 고가마사오의 작
품 계열과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그는 중학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 탓인지
그의 선율에는 한국적인 정서 표현이 자연스럽게 정착돼 있다. 그런 원점은 한
국적인 감정일 것이며 이러한 그의 노래는 일본인의 환영을 받게 되었다. 고가
마사오는 '나는 청년 시절을 서울에서 보내면서 한국서민층의 애환을 감수성
깊게 받아왔다'고 했다."(황문평)

일본에서 이런 식으로 엥까의 원류가 한국이라는 怪論理를 펴면서 엥까선율
을 왜색적이라고 규정짓고 있는 한국을 은근히 비난하고 나섰는데 일부 국내
가요인들이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이 기회에 이미 방송금지곡으로 묶인
노래들을 재심의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하게 됐다.

과연 엥까는 무엇인가? 1883년, 일본은 군인칙어·신문조례·징병령 개정법을 발
표하여 군국주의로의 대변혁을 시도했고 이 무렵 국민의 시국관과 정치 풍자
를 담은 講談이 성행했다. 특히 일본의 소오시(壯士)들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
노래들을 즐겼는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자유엥까(自由演歌)라고 불렀고 그
들의 엥까는 일본의 俗謠선율에 시국정세를 반영한 가사를 붙인 것이었다.

1907년경부터 거리의 악사를 엥까시(演歌師)라고 했으며 이 무렵부터 서양음
계를 변모시킨 요나누끼음계가 서서히 사용되기 시작했고 노래의 성격도 정치
적인 것에서 점차 남녀의 사랑·이별·슬픔 등의 비탄조로 변화되면서 일본 서민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것이 그대로 한국 유행음악 초창기의 모
델이 됐던 것이다.

5. 우리 가요는 이름이 없다.
프랑스는 샹송이 있다. 일본엔 엥까가 있으며 미국에도 록큰롤·칸트리송 등 고
유한 이름과 개성을 갖는 대중음악이 있다. 우리 노래엔 그런 이름조차 없다.
흔히 '국내가요''대중가요'라고 부르긴 하지만 그 둘 다 고유명사는 안될 것이
며 더욱 '대중가요'라는 표현은 우리 식 표현이 아니고 일본식이니 이것도 문
제가 있다. 한때 일부 매스컴에서 우리가요에 이름을 붙이자는 운동을 벌였으
나 지금은 다시 조용하다. 미국의 대중음악을 이끄는 전문가들이 일본 대중가
요를 J-Pop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아주 괞찮은 착상으로 여겨진다. 우리 가요
를 K-Pop으로 이름지어 보는 것을 제안한다.

일제에 나라를 강점 당한 불행 속에서 어린 시절·젊은 시절이라고 하는 인생
의 봄을 체험한 세대들은 어떤 의미에선 아비의 원수를 갚을 수도 없고 갚지
않을 수도 없는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에 고민하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들
의 행복했던 과거의 봄은 분명 빼앗긴 들에서의 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들의 이성이 분명히 그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슴 한 구
석의 감정은 비록 빼앗긴 들에서의 봄일 망정 자기 생애에 두 번 다시 되풀이
될 수 없는 단 한번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봄에 대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의 향수를 느낀다. 이것이 그들의 의식분열이요 인격상실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한낮에는 열렬한 반일론자가 됐다가도 밤이 되어 대포 한잔
이 몸 속에 들어가면 얼큰한 술기운과 함께 흘러간 일본식 대중가요의 '흘러
간 노래'에 속절없이 감복하고 만다. 특히 경계할 것은 그들의 영향 밑에서 성
장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부지불식간에 어른들의 취향에 물들어 가지는 않
는 것인지 하는 걱정이다.

한 시절에 잘못 뿌려진 씨앗이 해방 55년의 오늘까지도 그 세력을 과시한다고
하면 우린 다시 한번 현실을 정확하게 보아야할 것이다.

                                       1985년 8월 {나의 음악실}
** 이 글을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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