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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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Subject  
   음악과 함께 여름을...
  

푸르디푸른 수해(樹海), 작렬하는 태양,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외로운 사람들
도 조금은 시름을 덜 수 있는 여름입니다. 저는 때때로 속옷이나 셔츠를 갈아
입으면서 문득문득 못살고 못 먹었던 옛날을 그리워 할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속옷이나 셔츠를 제게 입히실 때는 그 하나하나를 손으로 빨고 헹
구셨을 뿐 아니라(그땐 요즘처럼 질 좋은 가루비누 같은 것도 없었죠) 먹다 남
은 밥알을 정성껏 으깨어서 풀주머니에 넣은 다음 하얗게 빨아진 옷에 풀을 먹
이고 그걸 또 밝은 양지의 빨랫줄에 널어 풀이 빳빳하도록 말리셨습니다. 어
디 그뿐입니까? 일단 옷이 마르면 다리미 가득히 숯불을 넣고 오늘처럼 이렇
게 더운 땡볕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방울을 뚝뚝 흘리시면서 다림질을
하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가 제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아주신 속옷과 셔츠를 갈아입
게 되죠. 이때 저는 으레 그 옷들을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습니다. 거기엔 어머
니 냄새는 물론이고 뭐라 형언키 어려운 자연의 냄새가 배어있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지금도 그런 습관이 남아 있답니다. 번번이 실망 하면서도 말입니다.

세탁기에 휙 던져 넣고 비닐 봉지에 담겨진 가루비누를 듬뿍 뿌리고서 플라스
틱 프로펠러로 냅다 돌려댄 뒤 윙윙거리는 탈수기로 물 짜내고 손바닥만한 테
라스에 잠시 널었다가 건네주는 속옷에서 어머니의 냄새는커녕 무슨 자연의
냄새가 나겠습니까? 세탁기니 가루비누니 탈수기니 하는 것 모두 현대문명이
긴 하지만 저희들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쌓아온 저 아름다운 '빨래문화'는 슬그
머니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2세들은 불고기집에나 가야 숯불
(사실은 그것마저 합성숯이라는 가짜 숯이지만)을  볼 수 있으니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불을 보면 불고기나 갈비를 연상할겁니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는 조용함, 은근, 끈기로 대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처럼 뜨거운 계절엔 나이 지긋한 남자들은 죽(竹)부인을 동무 삼아 더위를 이
겨냈고, 청풍이 돌아드는 대청이나 느티나무 아래에서 옛 현인들의 교훈서를
읽는 것으로 더위를 식혔습니다. 콩나물 시루 같은 풀장에서 복작거리다 아폴
로 눈병이나 앓는 요즘의 피서 - 그건 어쩌면 피서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만 -와는 근본적으로 격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냉장고, 아이스크림, 선풍기 따
위의 인공적 피서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피서문화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
입니다.

올 여름 부산 음악계는 전례 없는 활발한 무대 작업을 펼치고 있어서 오히려
여름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거의 매일 저녁 음악회의 막은 오르고 연주가들은
열과 성을 다해 음악을 만듭니다. 그러나 객석 쪽으로 잠시 눈을 돌려보면 빈
자리가 너무 많은 것이 발견됩니다. 일부 유명한 연주가의 음악회를 제외한다
면 객석의 빈곤한 모습은 매양 같은 형색입니다. 연주가는 있는데 청중이 없
는 묘한 광경이죠. 음악회를 주관하는 전문가들은 날이 갈수록 비어있는 객석
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긴 한숨을 뱉습니다. 그렇다면 그 청중들은 어디로 갔는
지 그것이 문제죠.

음악을 듣는 행위는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프로야구를 관전하듯 오징
어를 씹으며 연주회장에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또 음악에 대한 상당한 훈
련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뿐 아니죠. 연주회장이 요구하는 에티켓도 여러 가
지를 지켜야 합니다. 인내해야 하고 예의를 지켜야 하고 거기다 돈까지 투자해
야하니 어찌 보면 청중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현상일련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세탁기가 우리의 전통적인 빨래문화를 없애버린 것이나 프로가
아마를 제쳐버린 이치와 서로 통하는 현상으로도 풀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 전문기관이나 여성 전문기관이 작성하고 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청소년
과 여성들의 취미 가운데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도 정작 음악회의
청중은 줄어들고 있으니 수수께끼치고는 정말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입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한결같이 부산의 문화에 대해서 걱정하하지
만 음악회에서나 전시장에서 그분들의 얼굴을 찾기 어려운 것도 역시 수수께
끼지요. 연주회장이나 전시관 같은 문명은 있으나 그곳에서 뜨거운 예술의 공
감을 나눌 문화가 약하니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문화를 논하는 언어는 그토
록 풍성한데 문화를 쌓고 나누는 행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7월입니다. 바다도 유혹하고 산도 유혹합니다만 올 7월은 음악의 유혹 속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꿈과 서정을 찾기로 합시다. 그것은 비단 나만의 여유에서 멈
추는 것이 아니고 우리 지역사회의 문화적 여유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1987년 6월 {우리들의 산} 기고문
** 이 글을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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