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휘자와 단원은 앙숙인가?
1989년이 시작되면서 세계적인 음악화제의 제1신은 지휘계의 거장으로 불려지
는 게오르그 솔티경(Sir Georg Solti)이 미국 시카고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다니엘 바렌보임(Danie Barenboim)이 그 뒤를 이어 신임
상임 지휘자로 임명됐다는 소식이다.
한 악단의 상임지휘자가 교체된 것이 무슨 화제가 되겠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실은 게오로그 솔티가 임기가 만료되어서 물러났거나, 아니면 스스로 그자리
를 내 놓은 것이 아니고 근 3년여에 걸친 단원들의 퇴진 요구에 무릎을 꿇었다
는 그 간의 속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이다.
솔티의 올해 나이는 76세.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이고 명문 부다페스트 음악
원에서 도나니, 바르톡, 코다이, 레오 바이너 같은 명교수의 문하에서 피아노
와 지휘 작곡법을 배웠다. 지휘자로서의 데뷔는 21살 때였지만 오히려 피아니
스트로서 이름을 먼저 얻었다. 1942년의 쥬네브 국제 콩쿨의 피아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독일의 명바이얼리니스트 게오르그 글렌캄프의 파트너로 연
주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솔티가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52
년 부터였다.
그 해에 솔티는 함부르크 시립가극장의 음악 총 감독이 됐는데 이때부터 영국
데가(Decca)레코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레코딩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들 레코드를 통해서 국제적인 스타급 지휘자로 부상했던 것이다. 특히 1958년
년, 레코드 사상 최초로 바그너의 '니벨롱겐의 가락지'전 4부작을 녹음하여 역
사적인 커리어를 구축하기도 했고, 1961년,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의 음악감
독으로 취임한 얼마 뒤엔 영국왕실로부터 '경'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솔티의
영광과 찬양은 이루 다 옮길 수 없을 만큼의 분량이다. 또한 그는 카라얀, 번스
틴 등과 함께 20세기 후반기의 최고의 지휘자라는 사실에도 변함은 없다. 그런
데 그가 시카고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고 하니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솔티가 시카고 심포니의 음악감독에 취임한것은 1969년이다. 20년간 그는 시
카고에 군림했고 이 악단의 음악적 명예를 드높였다. 그는 이 기간에 파리관현
악단의 음악감독('72-'75), 파리오테라 극장 음악고문('73), 런던 필의 수석지
휘자('79-)등 오케스트라의 요직들을 겸임하는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대체
로 지휘자와 단원이 충돌을 일으키는 요인은 두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지휘
자의 음악적인 역량이 고갈 상태에 이르렀을 때이고, 또 하나는 악단의 운영에
서 인간적인 존경을 잃었을 때 불화는 발생한다. 솔티의 시카고 20년은 너무
길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다.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소지
가 있을 만큼 너무 길었다는 것이다.
외형상 시카고 심포니는 솔티에게 '명예 지휘자'라는 칭호를 주기는 했지만 앙
드레 프레빈(Andre Previn)과 레너드 번스틴(Leonard Bernstein)에게 받쳐진
'계관 지휘자'에 비하면 격이 떨어지는 대접이라는 인상이다. 솔티의 개인 입
장에선 물러날 시기를 놓친 느낌이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후임자로 취임한 다니엘 바렌보임과 솔티의 묘한 인
연이다. 바렌보임은 솔티가 시카고에 부임한 2년 뒤 시카고 심포니와 깊은 관
련을 맺어 왔고, 솔티가 1975년에 파리 관현악단을 사임했을 때 그 후임으로
취임하여 6년간 파리 악단의 포스트로써 눈부신 활약을 했었다. 그러던 바렌보
임이 이번에 또 다시 시카고의 후임으로 취임했으니 흥미롭다. 그런데 더욱 흥
미로운 사실은 그간 주로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브렌보임이 근래에 와선
거의 배척을 당할 만큼 파리에서의 입장이 괴로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
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지휘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
** 대우합창단의 위기
국내 최초로 기업이 출자해서 창단된 '대우 합창단'역시 지휘자 문제로 해산
의 위기를 맞고 있다. 솔로이스트로서도 손색없는 기량을 갖춘 성악가들을 엄
선해서 국내 최초의 프로 합창단으로 출범한 대우 합창단은 세계합창경연대회
에서 대상을 따내는 등 국내외적으로 눈부신 활동을 펼쳐왔다. 모 기업인 대우
는 단원의 처우에서도 월 평균 80만-90만원의 대우를 보장하는 거의 파격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이 합창단의 존재는 한국 음악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것으로써 인식되어 왔다. 합창단의 산파역이었던 윤학원씨(중앙대 교수)가 지
금까지 상임지휘자로 이 합창단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작년 10월부터 문제
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단원(정단원 47명, 수습단원 24명)의 약 절반이
지휘자의 음악적 무능을 들고일어나 퇴진을 요구했다. 나머지 절반은 지휘자
를 옹호했고 관리를 맡고 있는 대우증권이 수습에 나섰으나 단원의 의견일치
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작년 12월 윤학원씨는 사표를 던졌다. 이쯤에서 차선책
이 나왔어야 했지만 신임 지휘자 초빙 문제에서도 양분된 단원들이 의견의 합
의에 이르지 못해 결국은 지금까지 재계약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사실상 대
우 합창단은 와해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관리 담당자는 "지금이라도 단
일안을 가져오면 재계약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 가능성은 거의 절망
적이라는 것이 지금의 분위기다. 지휘자 한 사람 쫓아내기 위한 시도가 단체
를 깨뜨리는 결과로 나타났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지휘자와 단원은 앙숙인가?
1989년 1월 월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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