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런던의 St.Martin-in-the-Fields교회
런던의 유서깊은 장소 '트라팔카' 광장 인근에 있는 St.Martin-in-the-Fields교
회. 1958년 어느 날 몇사람의 현악기 연주자들이 이 교회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엔 교회의 음악고문인 존 처칠도 동석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교회에
서 매주 화요일에 정기적 콘서트를 개최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기 시작
했다.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제안되고 그것들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들이 계획하고 있는 음악회를 전담할 앙상블 단체를 탄생시키는 것이 좋겠
다는 데 합의를 보게 된다. 열심히 활동한다면 '비루투오지 디 로마(로마合奏
團)'와 같은 저명한 앙상블 단체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갖게 됐다. 이
를테면 '비루투오지 디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희망을
갖게된 것이다.
그들은 1959년 11월 13일, 최초의 발기모임을 가졌던 바로 그 교회에서 첫 연
주회를 열었다. 교회는 이들 연주단체를 위해 장소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효과
적인 연주회를 위한 제반 후원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연주회는 당초의 기대
를 휠씬 능가하는 큰 성공을 거두는 가운데 정기적으로 열렸고, 1961년엔 단체
의 이름을 'The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국내에선 '아카데미
합주단'으로 칭하고 있다)라고 지었다. 교회의 이름을 연주단체의 이름으로 채
용한 것이다. 그 후 이 단체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상급의 실내악단으로 성장했
고, 런던을 로마에 못지않은 실내악의 도시로 부상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해냈
다. 아카데미 합주단 스토리는 교회가 지역사회의 음악문화에 기여하고 있는
살아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유수한 교회는 단순한 예배처로서의 기능에서 머무는 것이 아
니고 지역사회의 문화 나눔터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
고 이것을 그네들의 자랑스런 전통으로 여기고 있다. 저 유명한 프랑스의 '액
상 프로방스 국제 음악제'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주요 공연장
은 유서 깊은 교회들이다. 이밖에도 유럽의 각 도시들에 산재해 있는 저명한
음악제는 한결같이 교회를 주요 무대로 삼고 있다. 심지어는 유서 깊은 교황궁
정의 앞마당이 연주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아비뇽의 교황궁이 '아비뇽 축
제'의 主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실정은 어떠한가? 서울의 경우, 충현교회 등 소수의 몇 교회들이
공연장으로 개방되고 있다. 그러나 거의 교회음악에 한정되어 있는 점이 유럽
과 다르다. 부산에서는 천주교 중앙성당이 오르간 공연을 위해 몇 차례 공개
된 일은 있지만 다른 교회의 문은 문화를 향해서 여전히 굳게 닫혀져 있다. 이
토록 어쩌다 한 두 번 교회가 문화행사의 터로 등장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우
리 교회들이 문화운동의 본격적인 터전이나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타났던 예
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우스개 말로 우리 나라에서 제일 많은 것이 약국과
교회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 교회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 엄청난 잠재력이 문화 현상에 대해 거의 외면하고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부산의 경우만 해도 당장이라도 연주홀로 사용할 수 있는 훌륭한 교회는 얼마
든지 있다. 특히 최근에 세워지고 있는 대형 교회들의 대부분이 음향적인 고려
를 설계에 반영하고 있어서 더욱 그 가능성은 높다고 보아진다. 그러나 실제로
는 높아지는 첨탑만큼 對 社會, 對 文化에 대한 교회의 벽도 높아지는 것이 안
타깝고 아쉬운 것이다.
부산의 공연장은 남구 지역에 특히 집중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공
연 공간이 지역적으로 안배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문화적 혜택이 고루 미치
지 못하고 있다. 요즘처럼 교통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제아무리 관심 있는 공
연물이라 할지라도 괴정이나 동래에 거주하는 사람이 시민회관이나 문화회관
으로 발을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의 객석이 채워지지
않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공연장이 지역적으로 고른 분포를 갖지 못하는데서
찾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새로운 청중을 창출하는데도 커다란 장애 요인
으로 여겨진다.
몇해 전, 프랑스의 '파리 아르스 안티콰'라는 연주 팀이 부산에 왔었다. 당초
의 계획으로는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이들의 연주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
나 이들을 초청한 매니저의 재정 형편으로는 거의 100만원에 이르는 대관료를
치르는 모험을 할 수 없어 프랑스 문화원의 컴컴한 영화관에서 음악회를 치뤘
다.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연주가들의 음악을 불과 기십명의 청중들만이 듣는
초라한 헤프닝으로 몰아간 것이다. 만일 우리 지역에 그 훌륭한 시설의 교회
가 단 한 곳이라도 연주장으로서 개방되어 있었다면 보다 많은 청중들이 모처
럼의 멋진 음악 체험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교회에 요구하는 역할과 사명은 많다. 또한, 교회가 지향하는 역
할과 사명도 많다. 그 가운데 하나, 교회가 문화에 기여하는 역할도 대단히 중
요하다. 거듭 강조할 필요도 없이 서양음악이 거둔 오늘날과 같은 찬연한 발전
과 성과는 교회로부터의 성원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보아도 과한 것은 아닐 것
이다.
부산은 절대적 연주장소의 부족과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연주공간으로 인
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산의 음악문화는 대다수 시민들
의 무관심과 절대적인 후원의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훌륭
한 공간과 많은 힘을 갖고있다. 교회의 문이 열려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제반
현실에서 가장 커다란 문화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명제가
될 것이다.
공연문화의 수용이 일부 애호가들만의 한가로운 놀음이 아닌 이상 이것의 대
중적 확산을 위한 방안과 수단들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급
한 것은 공연장의 지역적 확산이며, 여기에 우리의 훌륭한 시설의 교회의 역할
이 있는 것이다.
1992. 6. 15. 목요문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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