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실내악, 그 가운데서도 피아노 트리오의 역사는 1970년에 시작되었다.
1970년 12월 12일, 당시 부산의 유일한 공연장으로 이용되었던 대청장 연주홀
에서 있었던 {부산 피아노 트리오}의 창단 연주회가 그것이다. 물론 이 연주회
는 부산 음악인에 의한 최초의 피아노 트리오 이벤트였으며, 실질적인 부산 실
내악의 역사가 시작되는 기념할만한 음악회였다. 멤버는 김진문(바이얼린), 배
종구(첼로), 제갈삼(피아노)이었다. 이때의 연주 곡목은 드보르작의 '둠키'등
이었으며, 동 트리오는 1973년 4월과 12월에 잇달아 연주회를 열고 베토벤, 하
이든, 슈베르트, 스메타나의 트리오를 연주하는 한편, 재부 작곡가인 조희주
와 최인식에게 작품을 위촉하여 매 연주회에서 그들의 작품을 연주하여 창작
계를 고무시키는 등 그 활약이 대단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그후에도 계속되어
1974년, 1978년 1988년으로 이어졌다.
피아노 트리오의 제2 세대는 1988년에 탄생되었다. 김영희(바이얼린), 고재용
(첼로), 한명희(피아노)에 의해서 창단된 {부산 트리오}가 이 지역의 제2 세대
피아노 트리오로서의 기치를 내 걸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제1 세대에 비해
월등하게 좋은 조건 속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좋은 조건이란, 1세대가 결혼
식장을 전전하면서 연주할 수밖에 없었던데 비해 훌륭한 연주 공간을 얼마든
지 활용할 수 있었으며, 이들의 활동을 철저하게 받쳐주는 메니저가 있었다는
사실,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실내악 애호가들의 양적 질적 증가 등
이다. 또한 이들의 연주기량이 비교적 탄탄했던 것이 좋은 반응을 일으켜 새로
운 실내악 인구를 연주 공간으로 이끄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됨으로써 장차
새로운 트리오의 탄생을 예고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연주가들이 제일 먼저 고무되었다. {뮤즈 트리오}가 그들이
다. 1989년, 임병원(바이얼린), 이유미(첼로), 조현선(피아노)이 제3세대의 출
항에 나섰다. 30대답게 그들은 대단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피아노 트리오의 역사를 열었던 {부산 피아노 트리오}의 멤버들이 60대의 연
령 탓으로 휴면을 하고있는 상태에서 1980년대 후반은 {부산}과 {뮤즈}의 활
약이 두드러졌다. 그런 가운데 지난 9월 11일, 제4의 트리오가 데뷔하였다. 김
용문(바이얼린,동아대 교수), 최영숙(첼로,전 시향부수석), 서심미(피아노,경
성대 교수)에 의해 결성된 {멜로스 트리오}가 문화화관에서 첫 연주회를 가졌
던 것이다. 그들은 베토벤의 제3번과 아렌스키의 트리오를 앞 뒤에 배치하였
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소품을 중간에 두어 객석의 공감을 도출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확실히 하였다.
멜로스의 출현으로 부산은 이제 3개의 현역 트리오를 갖는 도시로 발돋음 하
게 되었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중들은 이들 세 단체가 향후 벌이게
될 선의의 경쟁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갖게되었다.
필자는 이런 기회를 빌려서 이들에게 몇 가지 주문을 한다. 첫째, 레퍼토리의
확대를 위한 땀을 흘려 달라는 주문이다. 알다시피 피아노 트리오의 곡목은 거
의 제한되어 있는 형편이다. 때문에 기존 작품의 편곡이나 새로운 작품의 작곡
을 통해 이러한 한계가 극복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특히 작곡의 의뢰는 창작
계를 활성화시키는 부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보람있는 일이다.
둘째, 실내악 인구의 확대는 반드시 연주에 대한 신뢰와 흥미를 통해 이룩되도
록 힘써 달라는 주문이다. 연주의 완성도와 곡목의 친화력이 동시에 추진될
때 실내악 인구는 증가 할 것이다. 세 째, 연주 공간에 대한 종래의 인식의 벽
을 허물어 달라는 주문이다. 청중이 있는 곳에 트리오가 찾아가는 적극적 사고
와 실천이 있을 때 이 분야의 음악은 보다 친숙한 음악언어로 정착될 수 있다
는 믿음을 갖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보다 강한 프로페셔날리즘의 무장이 필요
할 것이다.
피아노 트리오의 잇단 창단을 지켜보면서 이 지역에도 이제는 전문적인 직업
실내악단이 출현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 희망은 멜로스 트리오의
창단이 갖고 온 선물이기도 하다.
월간 '현장'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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