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듣기
시 : 정지용
곡 : 김희갑
노래 : 박인수, 이동원
http://youtu.be/h8V3bm8ioGM
시 : 정지용
곡 : 김희갑
정주연(Mez-Sop)
유슬기(Ten)
http://youtu.be/lx8GJh1Qo_o
테너 박인수와 대중가요 가수 이동원이 입을 맞춰 노래한 <향수>가 화제가 되고 인기를 끌고
있다.
1981년, 플라시도 도밍고와 죤 덴버가 노래해 크게 히트했던 Pherhaps Love가 연상되고, 너무
비슷한 흉내를 내는 것 아니냐는 시비도 있긴하지만, 이런 시도가 우리 음악계에 몇 가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더 큰 관심이 쏠린다.
박인수와 이동원의 노래가 방송에서 소개되자 청취자의 반응은 음악방송 엽서 희망곡의 쇄도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신기하고, 재미있고, 예쁘다는 바ᅟᅵᆫ응이 주류다. 긍정적이다.
헌데, 순수음악계에선 논의가 양분되고 있다. 부정적인 반응은 해당 성악가가 재직하고 있는 대
학 학부형들에게서 가장 적극적이다. “대학교수가 그럴 수 있느냐!”는 거다. 이 곡 레코딩할 때
박인수교수는 당연히 이런 반응을 짐작했을 것.
어차피 누군가는 이 일에 총대를 메야했는데, 단지 그 일을 박교수가 먼저 시작했을 뿐이다. 대
놓고 말을 하진 않지만 성악계의 상당수 인사들도 이런 시도에 대해 못마땅한 생각들을 갖고 있
다. 물론 박교수의 용기 있는 행동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성악가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제가 화제에 오르고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대학교수가 연주가를 겸하고 있
어서다. 전업연주가의 경우엔 전혀 문제 될 사유가 아니다.
약 20여 년 전 부터 <가곡과 아리아의 밤> 성악공연이 우리나라 공연의 큰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해마다 이런 공연이 수없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데 정작 성악가들이 연주하고 있는 레퍼
토리는 거의 한정되어 있다. 그 목소리에 그 노래가 되풀이 되고 있는 셈.
따라서 필연적으로 청중이 즐길 수 있는 레퍼토리의 확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게다가 이런 종
류의 공연은 제작비 무담이 꽤 과중한 편이어서 주최자의 입장은 상업적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
렵다.
그 결과, 거의 대학교수를 겸하고 있는 우리 성악가들은 무대에서 Yesterday도 Don't Cry For
Me Argentina도, <잊혀진 계절>도 노래한다. 그러던 것이 이젠 음반이라는 보다 개방적인(무대
라는 한정된 공간을 떠난) 매체에까지 교수가 가요로 등장하니 화제가 되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악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연주기술이 향상하고, 여기에 부응하는 작곡가들이
점차 깊은 예술성과 고도의 연주기량을 요구하는 작품을 쓰게 되면서, 연주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계층이 확연하게 구분되기 이전까지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의 구별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음악사의 기록이요 증언이다.
13세기의 음유시인들인 뚜루바또레, 민스트렐, 미네징거들은 스스로 시를 짓고 곡을 붙이고 직접
노래하고 연주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Sing A Song Writer인 셈이다.
이러한 전통은 음악형식이 완비되고 고도의 작곡기술과 고도의 연주기술을 갖춘 전문적 연주가들
이 출현한 시대에도 어느 정도 계승되고 있었다. 바로크 시대에 크게 유행된 모음곡 형식이란 것
도 실제로는 마을에서 혹은 도시에서 일반인들이 즐겨 춤추었던 민속춤곡을 모태로 하고 있으니
실제적 표현 기술은 정제되어 있을지언정 그 알맹이는 지극히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해야 할 것
이다.
심지어는 예술성이 매우 짙다고 여겨지는 당시의 작품에서 그 무렵 민간 사이에서 크게 유행됐
던 대중음악이 거의 원형 그대로 채용되고 있는 예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모차르트의 작품
에서도 같은 예는 있다. 피아노 변주곡 <반짝반짝 빛나는 별>도 그 주제는 당시의 유행가요 <어
머니, 이 괴로움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를 주제로 삼지 않았는가!
이처럼,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은 한 뿌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예술환경이 변화하면서, 특
히 18세기의 빈(Wien) 고전악파 이후 순수음악의 미학적 이상이 엄정한 형식미에 주어지면서부
터 이른바 순수와 대중이 확연한 별리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20세기의 음악환경은 레트로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대륙 미국에서 생성된 재즈음악
이 작곡가들의 새로운 음악재료, 신선한 음악언어로 채택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라벨,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바르토크가 이 작업에 앞장서는 작곡가들이 되었고 그들의 작품은
크게 환영 받았다. 여기에 미국인들은 런던 프라머네이드 콘서트(Promnade Concert)를 본 떠
보스톤 팝스 오케스트라, 앙드레 코스테라넷츠 오케스트라 등을 속속 탄생시키면서 순수와 대중
의 손을 맞잡게 했고 여기에 런던의 만토바니 악단이 가세했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한자리에서 연주했고, 클래식은 유행음악의 스타일로 유
행음악은 클래식의 스타일로 편곡 연주하여 순수와 대중의 접목에 뛰어들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
게 된다. 아마도 그 代表的 작품이 아서 휘들러(Arthur Fiedler, 美 1894-1979)가 한 책방에서
발견한 가데(W.Gade, 1817-1890)의 <질투>가 아닐까 한다. 가데는 덴마크의 명성 높은 순수음
악 작곡가였지만, 질투라는 작품은 그 농염한 관능미로 인해 첨단 유행음악 못지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결과적으로 아서 휘들러와 보스턴 팝스의 음악적 진로를 활짝 예시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1980년대 초,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음악 사상 빛나는 위대한 명곡들을 파격적인 디
스코 리듬으로 편곡 연주하여 <Hooked On Classics> 열병을 일으킨 사건은 순수와 대중의 크
로스 오버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고, 뒤를 이어 전자악기 무그 신디사이저에 의한 거의 무한대
의 편곡으로 크로스 오버 현상은 더욱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성악계에서도 이러한 붐이 형성되어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듀엣이 등장하고, 호세
카레라스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다투어서 팝을 노래하는 대열에 섰다.
우리나라에 이 물결이 밀려온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가장 먼저 팝스 콘
서트를 열었고 KBS교향악단이 여기에 가세했다. 1984년에 부산시향도 이런 시도를 몇 번 했지
만. Hey Jude 같은 외국 팝송은 별 저항 없이 연주하던 시향 악장이 국내가요는 끝내 못하겠다
고 버텨 실현되지 못한 역사가 있다.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 본다. 대학교수 성악가가 대중가요 가수와 노래한 것이 우리네 상황
으로는 큰 사고를 친 거였다. 그러나 박인수교수가 질러댄 덕에 이런 류의 연주에 대한 논의 가
급물살을 탔다.
우리에게도 중간음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미국 작곡가 르로이 앤더슨에 의해서 <세미
클래식>이란 용어가 만들어지고 아울러 그런 중간음악이 대중에게 사랑 받으면서 1950년대를 전
후한 미국의 시민문화가 얼마나 건강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박인수교수와 이동원의 듀엣 송 향수를 중간노래로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만일 이러한 논의에 동의가 가능하다면 보다 많은 중간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순수음악과 대중예술이 이처럼 첨예하게 양분된 우리의 음악문화 상황에서 상대
적으로 대중음악 편향으로 되어가는 청소년의 정서생활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L.앤더슨이 발표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대중문화에 신선한 바
람이 되었던 Walfzing Cat, Syncopated Clock 같은 근사한 중간음악이 우리 안에서도 얼마
든지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믿음의 시발은 박인수교수와 이동원가수의 노래에서 찾아졌
다.
◈ <향수>는 1989년에 발표됐고, 위의 글은 그 직후에 국제신문 칼럼으로 썼던 것입니다. 지금
새삼스레 읽어보니 참 세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합니다. 그래도 그 땐 중간음악 문제가 아주
심각한 이슈였습니다. 2022년 7월 마지막 날에 이 글을 교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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