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열리는 각종 음악회의 청중이 눈에 띨 만큼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에 기록된 청중의 꾸준한 증가추세와 대조되고 있어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분야에 종사하는 민간 메니저들은 청중의 급격한 감
소 추세에 당황하고 있으며 가뜩이나 영세한 그들의 입지에 적지않은 타격을
주고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세계적]이라는 칭호가 붙어있는 초일류? 연주회도 표를 파는데 상당한 어려
움을 겪는다고 한다. 사라장과 소프라노 조수미의 리사이틀조차 회원권 판매
에 혼줄이 났다는 후문이 들릴 지경이다.
음악회를 찾는 청중이 줄어드는 원인은 무얼까? 첫째, 다양한 음악감상 매체
의 보급이 음악회장을 찾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이 즐기
는 MP3에서부터 고급 오디오 기기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매체를 통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으니 구태여 연주회장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의외로 많았다. 게다가 최근엔 대형 화면을 통해
서 해외의 저명한 연주회 실황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어서 연주
회 청중 감소에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둘째, 현대사회의 다양한 레저 붐이 음악회의 청중을 감소시키고 있다는거다.
손쉽게 큰 돈 들이지 않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레저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음
악회의 입장료는 날로 상승하는 쪽이고, 갖가지 감상예절을 지켜야만 하는 음
악회는 왠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셋째,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곡목들이 대체로 17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유물들인데, 그런 음악들은 왠지 오늘의 세대와 감각적으로 맞는 것 같지 않
고, 현대 음악도 도무지 난해하기만 하니 이 역시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이
를테면 레퍼토리에 대한 이해의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현상이다.
넷째, 연주자들의 음악적 완성도가 청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이다. 음악회를 다녀오면 기쁘고 행복해지길 원하는데 오히려 후회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일부 청중들은 "그게 어디 연줍니까?"라는 부정적 반응이 강
했다.
다섯째, 청중을 위한 [팬 서비스]가 없다는 지적이다. 입장료도 비싼데다 프로
그램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정작 사보면 연주자의 잡다한 프로필 나열에다 제
대로 해독할 수도 없는 외국어 투성이의 곡목들, 툭 하면 공연 시작이 늦어지
는 등 청중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불만들이다.
여섯째, 우리의 음악교육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초·중·고교의 음악교과
에 배당되는 시수(時數)도 절대량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교육 내용이 지나치
게 경직되어서 "음악은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만 심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음악회의 청중이 감소되고 있는 현상은 서울도 비슷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울의 현황은 부산과는 다소 달라서, 어떤 연주단체의 경우는 오히려
청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아무리 비싼 회원권이라 할지라도 돈을
내고 꼭 듣고 싶은 연주가 있는가하면, 초대권을 받아도 가고 싶지 않은 연주
가 있기 마련이다.
음악회의 청중이 줄어들게 하는 첫 번째의 이유로 등장한 첨단 감상매체의 위
력을 생각해보자. 예전엔 오디오 기기는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갖는 것으로 인
식됐으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성능 좋은 MP3 플레이어를 손쉽게
살 수 있고, 소프트웨어도 CD, DVD 등 다양해서 어디에서건 손쉽고 값싸게 접
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예전과는 달리 연주회 실황을 담은 녹음물이 대량
으로 쏟아져 나와 스튜디오 레코딩의 약점을 완벽히 커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음악회는 구태의연한 스타일과 레퍼토리로 일관하고 있으
니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오디오와 비디오에서 경험할 수 없
는 새로움을 음악회가 제공할 때 청중은 다시 발길을 옮길 것이 아니겠는가?
"음악회는 왠지 갑갑하다.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 "음악회는 원래 이렇게
재미없는 것인가?"라고 반응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우리 음악회들이 안고있는
다양성의 결여가 이런 반응을 불러왔던 것이다. 수년 전, 서울에서는 테너 박
인수씨의 이색적인 음악회가 있었다. 음악평론가 이강숙씨가 기획한 그 음악
회는 박인수씨로 하여금 가곡과 오페라와 유행가를 몽땅 노래하게 하는 새로
운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음악회가 열리기 이전부터 이 파격적인 스타일에 대
한 시시비비가 대단했다. "클래식 성악가가 유행가를 노래해도 되는 것인
가?"라는 것이 화제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청중들은 그 음악회를 신나게 즐긴
데 반해서 평론가 모씨는 최악의 형용사를 동원해서 기획자와 연주자를 싸잡
아 비난하고 나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음악회도
필요하다.
이미 1895년에 런던 퀸즈 홀(Queen's Hall)의 지배인 로버트 뉴만이 아이디어
를 내서 "프라머네이드 콘서트(promenade Concert)"라는 대중취향의 음악
회를 개발하여 청중개발에 성공하고, 결과적으로는 런던을 세계에서 가장 활
발하고 우수한 연주의 도시로 발전시킨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음악회 스타일의 다양성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답답한 현실을 해결
할 수 있는 처방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무대에 나서는 연주인들의 음악적 완
성도는 새삼 논의될 필요도 없을 만큼 절대적인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청중확보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청중들은 완성도가 높은 프로를 원한다. 그들의 세련된 연주를 매체
로 하여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청중은 원하는 것이다.
최근,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청중이 점차 증가되고 있고, 지난 5월 하순에 있었
던 정기연주회에선 일부 청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던 사실은 우리에게 희망적
인 징조로 받아들여진다. 청중들이 부산시향을 프로 단체로 대접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가야할 대목이 있다. 로컬 음악인들이 열고 있는 리사이틀
이 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거다. 막대한 대관료 등의 제작비를 자비로 들이면
서 무대에 선다. 그렇다고 음악회의 스타일이 신선한 것도 아니고, 문화회관
대강당 같은 커다란 홀을 충분히 공명시킬 수 있는 음량을 갖추지도 못했고,
객석은 썰렁하기만하니 딱하다. 공연장 입구의 큼직큼직한 축하 화환과 공연
뒤의 화려한 리셉션 파티는 음악의 질적 내용과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프로
정신은,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상품화시키는 것이라는 원론이 새삼 강조되어
질 대목이다.
청중에 대한 음악인들의 서비스도 앞서 지적되었으나 이 문제 역시 시정되어
야 할 대목이다. 그 가운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프로그램이다. 대부분의 프
로그램은 거의 외국어 일색이다. 독일 유학파는 리사이틀 제목부터 "아벤트
(Abend)"이고 이태리, 프랑스, 미국, 스페인 유학파도 예외는 아니다. 곡목의
표기도 숫제 외국어로만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전문가들조차 어리둥절해지게
되고, 연주자의 경력은 왜 그리 장황한지. 게다가 어떤 리사이틀에선 그 팜플
랫을 돈 주고 사야한다. 웃긴다.
이런 문제들은 물론 음악인 스스로가 현실 인식을 통해 해결해야 겠지만, 이
를 보다 능동적으로 풀어나갈 주체는 "예술 흥행사"라고 생각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로컬에서도 민간 메니지먼트들이 여럿 등장하였으나, 예술에 대한
소양 부족, 경영상태의 영세성, 능동적 시장개척 능력의 부족 등 전문메니저로
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활동한 것이 저간의 상황이었다. 때문에 시
장 원리에 의해 상당수의 민간 메니저들이 정리되고 있는 현상은 당연한 결과
이다.
예술시장의 건전한 육성은 그것이 곧 예술의 질적 향상을 가져오게 된다는 사
실을 예술 선진국의 선례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로컬에서도 대
형 메니지먼트가 탄생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투자없는 예술시장의 활성화
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전문적 안목과 확신으로 과감한 기
획투자가 선행될 때 비로서 예술공연의 열매가 열리게 되며, 이를 위해서 대자
본의 참여가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로컬의 민간 메니지먼트는 이제 자연스
러운 재편의 시기를 맞아야 될 것이다. 전문적 예술행정력과 제작능력을 수반
한 자본력이 제 기능을 발휘해야 음악인(연주인)을 프로, 준프로, 아마추어로
구분하여 그와 함께 청중개발에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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