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부산 국제 음악제가 갖는 의미
필자는 이미 수년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산에 국제 음악제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가져온바 있었다. 음악 축제는 한 도시의 문화적 질량을 가늠
하는 척도가 될뿐아니라 시민의 문화적 자긍심의 구체적 표현이라는 차원에
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드디어 부산
에 국제음악제가 창설되었다. 제 1회 부산 국제 음악제는 1991년 11월 8일부
터 14일까지 1주일간 문화회관과 파라다이스 비치 호텔에서 열렸다.
한국 최초의 국제 음악제는 1962년에 창설된 서울 국제 음악제였다. 정부가 주
체가 되었던 이 음악제는 제 2회부터 안익태 선생이 실무를 맡았고, 그 결과 당
시의 국내 음악계 상황으로서는 획기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세계적인 명성의
연주자들이 내한하여 명실상부한 국제음악제로서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에서 열린 두 번째의 국제 음악제는 제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시작된 대한
민국 음악제이다. 이 음악제는 문예진흥원이 주체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국제
음악제의 양대 산맥이랄 수 있는 서울국제음악제와 대한민국 음악제는 모두
관 주도형의 페스티벌인 셈이다.그런데 부산 국제음악제는 민간 주도형의 음
악제라는 사실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로써 이 음악제가 부산
음악문화 발전의 새롭고도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부산 국제음악제진흥회, 부산 음악협회, 국제신문이 주최한 제 1회 부산 국제
음악제의 예술감독인 제갈삼씨(부산음악협회 회장)는 작년 10월 12일의 기자
회견에서 "한국의 관문인 부산에 시민의 마음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문화축
제가 없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전제하고 "음악을 통해 세계적
인 문화도시로 발돋음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축제를 통해 부산의 발전적 미래
상을 세우고, 시민 스스로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참된 기회로 삼자"고 음악
제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한편, 부산직할시가 후원하게 되는 '91 부산 국제음악제의 음악적 성격을 정리
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과 엘가의 "희망과 영광의 나라"를 20대의 피아노,40명
의 피아니스트, 200여명의 합창단이 연주한다는 사실은 획기적이다. 이러한 스
타일의 연주가 과연 어떠한 음악적 결실을 맺을런지 미지수이겠으나 그 규모
와 희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하나의 역사적 이벤트가 될 것이다. 또한 연주 팀
이 국제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국내적으로는 부산, 대구, 여천 등의 다양한 구
성이 또한 이색적이다.
2.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에서 최초로 창설된 민간 악단으로 알려진 {페테
르부르크 모차르테움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대한 기대 역시 크다. 한국
과 소련 간의 국교가 정상화 된 이후 수많은 소련 연주 단체가 내한하였으나
자본주의적 경영 방법을 채택한 악단의 최초 공연이라는 측면이 특별한 주목
거리인 셈이다. 특히 이들의 주요 레퍼토리가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바로
크 음악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 점은 소련 악단으로서는 흔한 일이 아니
기 때문이다.
3. 매체를 통해서 널리 소개된 소프라노 박미혜씨의 부산 데뷔가 비상한 관심
의 대상이다.메트로폴리탄의 프리마 돈나라는 그의 화려한 경력과 서울 시립
대학의 교수라는 최근의 변화된 위상이 관심의 정도를 배가시킨다.
4. 부산에서 실로 오랜만에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연주된다는 사실이다.근
10여년만의 연주로 기억된다. 독창자 또한 모두 부산의 중견 성악가들이다.이
것 하나 만으로도 이 음악제의 의미와 역활은 크다.
5. 한국 작곡가(부산 작곡가)의 창작곡이 들어있지 않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
나 한편으로는 이 음악제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을 생각한다면 주최
측의 "우선의 과제는 경영적 자립이며, 부산의 향토성을 정립하는 문제는 점진
적으로 확보 될 문제"라는 논리에도 상당한 수긍이 간다. 다행히 부산 현대 음
악제가 내년부터 실시된다면 두개의 음악제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일천한 역사의 부산 국제 음악제가 제 뿌리를 튼튼히 내리기 위해서는 음악계
의 전폭적인 지원은 물론 지역사회의 각 부문이 협력의 손을 굳게 잡아야 할
것이다.
1991년 11월 {국제음악제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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