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해, 새봄을 맞는 기쁨을 담은 신춘특집을 제작했다. 그것은 방송에서
최초로 시도되었던 4악장 형식의 구체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이제는 세월의 낡
음이 완연하게 보이는 원고이지만 여기에 공개한다.
온갖 생명의 존재를 송두리채 거부하듯 그토록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겨울,
그 모진 겨울을 인내하는 우리들 앞에 마치 예고없이 찾아든 귀한 손님처럼 불
쑥 봄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우리들 몸이 느끼는 계절은 아직도 겨울이 까맣
게 남아 있는 듯하지만 우리 마음이 느끼는 계절은 마치 캘린더의 싱싱한 숫자
만큼이나 풋풋한 새봄입니다. 봄은 짓궂은 웃음을 띄우고 언젠가 하루아침에
문득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방글방글 웃으며 춤추는 아가씨처럼 가만히 날아드는 봄은 마치 우리
가 길에서 멀리 마주쳐 오는 벗을 보았을 때의 미묘한 감정 같은 것을 맛보게
합니다. 세상 만물이 봄빛에 취해 있고 우리들 뜰 안에 봄 노래가 빛나고 가득
찰 때 사람의 마음엔들 왜 물이 오르지 않고 싹이 트지 않겠습니까? 겨울 속에
서 맞은 봄. 오늘은 立春입니다. 저희 MBC FM은 立春을 기리는 모두의 가슴
마다에 새봄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는 신춘 특집 "봄의 교향곡"을 마련하고
앞으로 11시까지 두 시간 동안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보내드릴 신춘특집 "봄의 교향악"은 음악과 시와 음향만으로 구성되
는 4악장 형식의 구체 음악입니다. FM STEREO만이 구사 할 수 있는 풍요한
음향의 조화를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에 새봄의 밝은 메시지가 전해질 수 있도
록 4개의 악장엔 각각 고유한 표제와 소네트를 달았습니다. 가장 FM방송다운
특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저희가 최초로 시도한 이 "봄의 교향악"은 진행자
의 말을 최대한 생략하고 음악과 음향과 시가 빚어내는 구체 음악 속에서 봄
을 그리워하는 여러분의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제1악장 -
ANN - 제1악장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 EFFECT 배열
1. 겨울 삭풍, 기차 달리는 소리 (아득히)
2. 눈 위의 발걸음
3. 구보 소리
4. 배팅 소리
5. 골목 꼬마들 소리
6. 고드름 녹는 소리
7.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 소리
8. 빨래 소리
9. 병아리 부화장
10. 새 소리
11. 통통배 소리
12. 학교 운동장의 함성 소리
* SONNET(악장 표제 소개한 뒤 약 2분 뒤에 낭독. 먼 곳에서 오는 기차 EFFECT배음)MAIN ANN.
"남쪽 문이 열렸다. 오너라 나의 봄아 오너라
너는 내 가슴이 떨리는 대로 떨리는구나
나의 봄아 오너라, 나무 잎새들의 속삭임 속으로 들어오너라.
젊디젊은 꽃의 信徒속으로, 피리 속으로 들어오너라.
봄의 나른한 탄식 속으로 네가 털어놓은 두루마기로
취한 듯 비틀거리는 봄 바람으로
오너라 오너라 나의 봄아 오너라"
* 시낭송(제1악장 시작후 10分에 낭송)
"겨울 내내 참고 있던 진분홍 그리움이
진달래로 피는 봄
당신이 오시어 다시 피는
이 목숨의 꽃도 흔들립니다.
크신 이름이 나날이 새로 듣는
이 연둣빛 가슴에
진정 죽는 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소생하는 당신의 대지 위에서
다시 낯을 씻는 나
당신이 창조하신 죄 없는 꽃들의
얼굴을 닮게 하시고
그 웃음처럼 환희 당신 앞에 피는
그 울음처럼 겸허히 당신 앞에 지는
한 송이 떨리는 영혼이게 하소서
때를 가릴줄 아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제2악장 -
ANN. 제2악장 "새봄의 미풍과 계곡의 봄 노래"
. EFFECT 배열 순서
1. 미풍 2. 송아지 + 강아지 3. 계곡의 물소리
4. 빨래터 소리 5. 계곡 물소리 + 새소리
6. 송아지 + 강아지 + 막걸리 소리 + 개소리
7. 단소 소리 8. 미풍 + 계곡의 물소리 + 새소리
SONNET (송아지. 강아지. EFFECT 배음 처리)
"구릿빛 팔에 쇠스랑을 잡고
밭에 들어 검은 흙을 다듬는 낮
보기 좋게 낡은 초가 영마루엔
봄이 나른히 기고
울타리 밖으로는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웃는데
마을의 송아지. 강아지 새봄을 반기는 구나"
*시낭송
"파란 하늘에 흰 구름 가벼이 떠가고
가뜬한 남풍이 무엇을 찾아
강 너머 푸른 언덕을 더듬어 갑니다.
언뜻 언뜻 숲새로 먼 못물이 희고
푸른빛 연기처럼 떠도는 저 들에서도
종달새가 오늘도 푸른 하늘의 먼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시냇물이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아지랑이 영창 건너 먼 산이 고요합니다.
오늘은 왜 이 풍경들이 나를 그리워하는가요
산새는 오늘 어디서 그들의 소박한 궁전을 생각하며
청아한 목소리로 대화를 하겠습니까?
나는 지금 산새를 생각하는 빛나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임이여! 무척 명랑한 봄날이외다"
제3악장
ANN. 제3악장 "봄의 환희"
EFFECT 배열 순서
1. 각종 동물 소리 2. 각종 새소리, 세찬 물소리
3. 시장의 소음 4. 부화장의 병아리
5. 야호 ! 6. 종소리
SONNET
"하늘을 닦아내어 푸르름이 다가오는 풍요로움
뛰노는 어린 양들은 깡충거리나니
이 생기 넘치는 활력과 기쁨은 무엇이던가
에덴 동산에서 비롯된 대지의 감미로운 흐름이니
그것을 차지하여라 소유하거라"
시낭송
"어제는 씨름 선수 같이
뚝심 좋은 바람이 오륙도를 흔들더니
오늘은 금정산 골골마다
잠자던 두견화 허리를 붙안고 앉았다
봄이다. 바람이다.
봄은 가난한 연인들의 꿈이다."
제4악장 -
ANN / 제4악장 " 봄, 이제 여기에 !"
EFFECT 배열 순서
1. 알루미늄 배팅음과 함성 2. 시냇물 소리 3. 새+새+새
4. 빗소리 5.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6. 빨래 소리
7. 종소리+폭죽+기차가 종점에 닿는 소리
SONNET
"동백꽃 붉은 잎새 사이로
푸른 바다의 하이얀 이빨이 웃는다.
창 앞에 부서지는 물결소리
노랑 나비가 하나 -
유리 화병을 맴돈다.
봄은 이제 여기에 ! "
시낭송
"들어보세요,
종달이가 웁니다.
저 들녘 끝
봄 안개 자욱한 하늘 뒤, 어디서
종일을 목청 높이 종달이가 웁니다.
그렇게 험상궂던 먼 산령(山領)들은
보라빛 비단 피륙을 펼친 듯 제 숨결에 부풀고,
온갖을 어루만져
향긋한 바람결은 소올 솔 -
매말랐던 개울도 노래하기 시작하고
잔디 밭 새에는 이제는 눈뜨노라
한창 야단들인 어린 새 움들!
들어보세요
이렇게 다시 살아나는 목숨들의 기쁨을 노래하여
종달이가 웁니다.
산천에는 다시 봄이 온다고
종달이가 웁니다.
가만히 눈감고 들어보면
얼마나 황홀한 눈물나는 노래입니까.
그러나 여기
영원히 봄이 오지 않는 골짜기가 있답니다.
아무리 나무래고 기쓰고 악물어도
서로 껴안은 채 쓰러져 죽어만 가는
슬프고 외롭고 떨리기만 하는 골짜기랍니다.
아아 이 인간의 골짝에는 그 언제
저같이 황홀한 가락이 불려질 것입니까.
들어보세요,
종달이가 웁니다.
인간의 골짝에는 오지 않는 봄이
산천과 초목에는 봄이 다시 온다고
저렇게 종달이가
아지랭이 속에서 종일을 목청 높이 웁니다.
과연 새봄의 소식이 얼마나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셨는지 궁금하군
요. 2시간 동안 4악장의 구체 음악으로 구성해 드린 신춘특집 "봄의 교향악",이
제 아쉬운 作別의 시간입니다. 겨울 속의 봄을 맞는 기쁨이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 충만하시길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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