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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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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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솔리스트 앙상블 창단 콘서트 리뷰


◈ 사진
서울 솔리스트 앙상블

◈ 소리는 있으되, 음악이 없는 합창

지난 5월 29일, 부산시민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부산 솔리스트 앙상블 창단 연주회는 이
지역에서도 비로소 성악인들의 마음과 음악 모으기에 대한 공감대가 실현되었다는 보람과
기쁨의 현장이자 그 확인이었다는 사실에서 획기적인 음악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수년전부터 솔리스트 앙상블의 필요성은 꾸준히 논의되어 왔었다. 물론 직접적인 계
기는 서울솔리스트 앙상블(1984년 창단)의 의욕적 활동에서 출발된 것이긴 하지만, 전문성
악인이 어느 지역보다 많은 부산이니 마땅히 이런 콘서트는 있어야 했다.

부산 솔리스트 앙상블 창단은 몇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지역의 역량 있는 성악
가들이 모처럼 뭉쳤다는 사실이다. 성악은 기악과 달라서 오페라 이외 장르에선 협동작업
기회가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다. 특히 독창자로서 위상이 확실하면 할수록 합창 같은 보컬
앙상블에 나서는 기회가 더 감소되는 경향이다. 그 쉽지 않은 일이 실현되었으니 상징적
의미가 자못 크다.

합창음악의 특성은 통제되고 다듬어진 균질성이다. 그러나 솔리스트 앙상블의 특질은 문자
그대로 솔리스트들의 집합체라는 한계를 갖고 있어서 일반 합창단과는 확연하게 구분될 수
밖에 없다. 정의하자면 개성적인 것과 균질적인 것의 결합이 솔리스트 앙상블이라 할 수
있겠다.

부산 솔리스트 앙상블은
재부 각 대학의 교강사 급 성악가들,
시립합창단 수석단원,
독창회를 통해 기량이 인정된 남성 성악가들 34명이 망라되어 있다.
제1 테너 8, 제2 테너 8, 바리톤 9, 베이스 7명.
지휘는 단원들의 호선에 의해 이민환(부산대 교수, 바리톤)이 맡았다.

레퍼토리는
제1부에서 9곡, 제2부에서 8곡이었다.
거의 전곡이 청중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것이었다. 서울 솔리스트 앙상블의 경우와 비
슷했다. 예술성보다 사람들 속에 생동하는 합창의 보편적 기쁨을 노래하겠다는 의지가 포
함된 선곡이라고 여겨진다. 이것은 이날 참석한 청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으로 보답되고 확
인되었다.

우리 속담에 “첫 술에 배부르랴?”했다. 이 속담이 연주 결과에 대한 당치않은 변명으로 음
악계에서 꽤나 남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부산 솔리스트 앙상블이 그 어
떤 연주단체보다 관심과 기대, 음악계의 우정 어린 축복 속에서 창단 연주를 가졌다는 각
별한 위상을 생각하면 과연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응대했는지 검증할 의무를 느끼며 나
는 현장에 있었다.

연습이 턱도 없이 부족한 상태가 거의 모든 곡에서 나타났다. 솔리스트들의 집합체라는 한
계성을 계산에 넣는다 해도 이들의 소리는 통제력이 먹히지 않은 것이었다. 앞에서도 쓴
것처럼 아무리 이 그룹이 개성적 소리의 이질적인 집합체라 해도 그들의 연주행위가 합창
인 만큼 기본적인 음악적 통제력은 필수적 요건이다. 그러나 그들 노래엔 통제된 균질성이
없었다. 심지어 음정도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독창(?)들이 여기저기서 튕겨 나왔다. 연습
부족이 빚은 당연한 결과다.

무반주로 노래된
<독일 민요>
<철도 공사의 노래>
<저 못가에 삽살개>
<오, 쉐난도우>
<이탈리언 샐러드>에서 음정의 난조가 심해서(제2 테너 파트에서 특히 극심) 결과적으로
모든 노래들이 따로국밥 신세였다.

이런 현상은 <철도 공사의 노래>에서 유독 심했고,
<이탈리언 셀러드>에선 안지환의 열창에도 불구하고 합창의 난조가 이를 받침하지 못해 다
양한 음악용어로 구성된 악곡의 원래의 메시지 전달은 아예 길을 잃었다.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의 구별도 사라졌다.
피아노와 포르테의 구분도 아무 의미나 효과가 없었다.
코믹한 노래 <이탈리언 샐러드>는 수 없이 많은 음악용어들을 가사로 재밌게 사용해서 이
에 대한 적절한 표현상의 응대가 요구되는 작품이었지만 이들의 노래는 너무도 밋밋했다.
마치 연주자가 작곡가의 음악적 요구를 외면하는 것에 다름이 없었다.

<저 못가의 삽살개>,
보다 유머러스한 표현을 위해 필수적인 루바토의 사용 없이 시종 인 템포를 벗어나지 못
해서 재밌어야 할 노래를 그저 그런 노래로 뭉겠다.

이번 무대의 이벤트로 큰 기대를 모았던 <타이스 명상곡>은 바이올린과 합창의 조화와 대
비라는 아이디어를 제외하면 역시 기대와 동떨어진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합창 따로 바이
올린 따로, 세상에 이런 따로국밥도 없지 싶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합창은 음정과 박자
모두 안개 속을 헤맸다.

제2부에서도 연습 부족이 가져온 끔찍한 노래는 계속됐다.  

<꽃 파는 아가씨>는 템포의 완급과 강약의 극적인 변화를 통해서 밝고 생동감 넘치는 노
래를 만들어야 했음에도 그런 재미는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김연준의 정다운 가곡 <청산에 살리라>는 원곡이 갖고 있는 서정을 표현하려는 시도나 노
력은 찾아볼 길 없고, 오로지 “누구 소리가 더 크지?”라고 내기하듯 저마다 질러대기만하
는 듣기 민망한 무대가 됐다. 여기서도 피아노와 포르테의 구분은 실종 상태였고, 포르테
일변도의 해괴한 <청산에 살리라>가 되고 말았다.

베르디의 <순례의 합창>은 크레센도의 적절한 배합만 구사됐어도 훨씬 예술적 연주가 될
수 있었다.

뮤지컬 <남태평양>에서 노래되는 남성합창 <여자보다 더 귀한 것 없네>는 모처럼 전원이
충만한 자신감으로 노래한 작품이었지만 가사에 맞춘 몸짓을 저음 파트의 몇몇 일부 단원
들만 하는 볼썽사나운 그림이 되었다. 이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에 따른 일관된 액션이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그들 스스로를 프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런 어설픈 행동을 하다
니 기분 참 씁쓸했다. 적어도 그 무대, 그 노래를 부를 때, 그들은 프로와 거리가 멀었다.

우리 속담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첫 술에 배가 부르랴?
그것은 전통적인 우리 민족의 아량이다. 기대했던 것만큼 결과가 도출되지 못했을 때 우리
는 이 속담으로 위로하고 위로 받는다. 그러나 정도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아무리 첫
술이라지만 기대치에서 지나치게 떨어진 경우엔 이 속담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부산 솔리스트 앙상블의 첫 술은 연습부족 공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미숙
한 음악으로 일관되어 이들에 대한 기대를 스스로 팽개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들은 기존
합창단을 향해서 적어도 몇 개의 예술적 방향은 제시해야 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큰 어
려움 없는 그들의 레퍼토리를 고려한다면 이날의 연주 결과는 놀랍고 실망스럽다.

악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솔리스트(?)들,
절제를 모르는 질러대기,
소리는 있으되, 음악은 없는 합창.
내가 가슴을 치며 들었던 부산 솔리스트 앙상블 창단 콘서트였다.

나는 그들의 노래에서 프로를 볼 수 없었다.

                             1991년 6월  음악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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