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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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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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피아노듀오협회 창립 콘서트 리뷰


◈ 사진
50회 정기연주회를 가진 부산 피아노듀오협회 회원들
윗줄 왼쪽부터 다섯 번째는 이 협회 초대회장을 지낸 원로 피아니스트 제갈삼 교수

미국 사람들은 카드놀이를 즐긴다. 미국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은 식사, 음주와
흡연, 키스, 그리고 카드게임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 번진 가장 미국적인 패스트푸드 햄버거도 기원이 카드게임에 있다는 썰이
있다. 카드놀이에 한참 열 올라있는데 배고프다고 게임 테이블 떠나 식사하기 곤란한 적이 어
디 한 두 번이었겠는가? 그래서 햄버거가 발명됐다는 거다. 이 발명으로 미국인은 카드도 식
사도 모두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됐다. 처음 이 음식이 패스트푸드 체인에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니? 저건 나도 몇 번 만들어 먹어본 거 같은데!  

지난 4월 8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회 부산듀오피아노협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을 받
고 필자가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이 햄버거였다.

** 듀오 피아노
이런 음악회는 그동안 심심치 않게 열려 왔다. 실제로 듀오피아노 연주는 피아노 독주회가 빠
지기 쉬웠던 진부한 상황들을 개선시키고, 나아가서는 피아노 연주회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
이라는 논의도 기왕에 없었던 것이 아니다. 특히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 분야의 활성화가 필
요하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쳐 왔었다. 그러나 그간의 상황이나 실적은 의욕적이지 못했
다.

거기에 더해 지금까지 연주된 레퍼토리나 연주내용이 주목 끌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보아진다.
부산듀오피아노협회의 첫 정기연주회는 이런 상황 속에서 열렸다.

분산되어 있던 부산의 피아노 듀오 팀들을 한 무대로 결집시켜 마치 개개의 주방에 이름 없
이 존재했던 속 고물 빵이 햄버거라는 이름을 달고 식당에 진열된 형국이 된 셈이다. 그래서
이 음악회는 관심을 끌었다. 당연한 일이다.

듀오피아노의 역사는 꽤 오래다. 시초는 관현악곡을 제한된 공간과 적은 경비로 재현시키고자
하는 의도에 기원한다. 그러던 것이 리스트에 의해서 독립된 피아노 장르로 영역이 확대되기
에 이르렀다.

4손, 혹은 2대의 피아노, 또는 그 이상으로 확대되는 복수의 피아노 연주는 이제 협회가 창
립될 만큼 우리 음악계에서도 상당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의미에서도 이번 연주는
의미가 있었다.

이 연주회엔 3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의 부산서 이름 있는 피아니스트 10명이 출연해서 모
차르트의 듀오 작품들만 모아서 연주했다. 모차르트 사후 200주년에 포커스를 맞춘 기획이었
다.

출연자는
김경혜, 김정우,
조영문, 차미소란,
나광자, 황명미,
강혜경, 이은재,
최윤희, 권숙희 등 5팀 10명 이었다.

김경혜와 김정우는 소나타 다장조 K.19d (한 대의 피아노에 4손)를 연주했다.

젊은 패기가 넘치는 역동적인 재기와 막힘없는 테크닉이 호감을 주었지만 모차르트를 베토벤
처럼 다루는 경향으로 거의 일관한 건 깊이 생각할 문제다.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이 일반적으
로 갖고 있는 청징한 톤의 재현은 피아니스트의 기본일 텐데, 이들은 아쉽게도 그걸 놓쳤다.

특히, 이 작품은 모차르트 초기 작품(9세)에서 거의 공통으로 등장하는 전기고전주의 시대의
유희적 개성(갤런트 적 성격)이 강한 소나타라는 사실과 당시의 악기가 오늘의 피아노와 현저
하게 기능적 차이를 갖고 있었다는 측면이 보다 깊게 연구되고 반영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갖
는다. 그것은 곧 이 작품 재현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음색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습하기에 앞서 반드시 악보의 문헌 연구를 선행
할 뿐 아니라, 작곡가의 전기를 읽고 자기가 연주하고자하는 작품이 작곡될 무렵의 모차르트
의 개인적 상황에 자기를 대입시키는 시도를 진지하게 실천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
일까?

차미소란과 조영문은 소나타 내림나장조 K.358(186c) (1대의 피아노에 네 손)를 연주했다.

원래 이 곡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썼는데 한대의 피아노로 두 사람이 연주 했다. 거의 완
벽한 호흡의 일치를 통해 듀오피아노의 매력을 흠뻑 들려준 무대였다. 호흡의 일치는 이 연주
형식의 생명과 같아서 이점에 관한 한 그들의 연주는 매우 치밀하고 밀도 높았다.

제2악장의 칸타빌레도 그들의 연륜이 노래되어 정겨웠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피아노 음악이
갖는 또 하나의 특성이랄 수 있는 재기 발랄함을 표현한 대목에선 함정이 있었고(특히 molto
presto에서), 빠른 페시지에서 가볍고 찬란한 광채가 더 돋보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
는다. 허지만 이들의 전체적 이미지는 모차르트의 미학적 객관성을 충분히 확보해서 모차르트
답다는 기쁨을 맛보게 했다.

나광자와 황명미는 Larghetto and Allegro 마장조(두 대의 피아노에 네 손)를 연주했다.

열 명 출연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듀오였다. 연륜과 경험은 때때로 상대적 우위를 갖
는다는 사실을 이 듀오는 실증해 보였다. 라르게토에서 비록 머뭇거리고 몇 번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체질적 너그러움과 겸손으로 미화되어 객석에 닿았다. 그 울림엔 따뜻
한 칸틸레나와 모차르트의 순수한 인간미가 묻어있었다.

알레그로에서도 그들의 겸손과 넉넉함은 여전했다. 기교의 과시, 눈부신 才氣의 데몬스트레이
션이 배제되고 절제된 단아함으로 모차르트를 재현했다. 노장들의 열려있는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무대였다.

강혜경과 이은재는 다장조 소나타 K.521 (한 대의 피아노에 네 손)를 연주했다.

모차르트의 후기 작품으로 대작이다. 이은재의 모차르트는 놀라울 만큼 모차르트다웠다. 필자
는 이런 표현에 비교적 덜 익숙한 편이지만 그의 연주엔 이 표현이 어울린다. 놀라운 모차르
트 재현이었다. 그의 음색과 그의 탬포, 프레이징, 아고기그 등 거의 모든 요소에서 충분하게
모차르트를 준비하고 표현했다.

이에 비해 강혜경은 둔중함이 지나쳐 음향적 균형에 무뎠다. 거기에 이은재의 페달링 난조가
더해져서 결과를 몹시 아쉬운 것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 음악회를 통해서 이은재라는 뛰어
난 모차르트 연주가를 얻었다. 그의 앞날에 기대를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주자는 최윤희와 권숙희였다. 소나타 라장조 K.448 (두 대의 피아노에 네 손).

모든 출연자들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듀오라는 느낌을 받았다. 밀도 높은 호흡의 일체감, 기
교의 균질성, 세련된 표현 등 장점이 많은 연주였다. 그들이 연주한 작품은 듀오 피아노곡을
대표할 만큼 유명한 곡이다.

두 사람은 꽤 오랜 세월 함께 연주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제3악장이 다 끝나고 모차르트의
그 영롱한 울림이 무대에서 이윽고 사라졌을 때, 왜 우리 가슴에 각별한 여운이 없었을까? 생
각해보면 이것은 매우 근원적인 물음에 이른다.

왜?
무엇을 위해서 연주하는가?

마지막 음표의 울림이 끝났을 때, 음악가는 청중의 가슴에 여운을 남겨줄 책무가 있다. 그걸
다른 말로하면 감동이다. 청중은 감동을 기대한다. 그런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청중은 씁
쓸하다. 마지막 연주자들의 화려한 연주가 왜 여운을 남기지 못했을까? 하는 문제는 연주가들
의 공통의 과제일 터.

탬포 설정이 빨랐다든지(특히 안단테의 경우), 흠 없는 기교였지만 모차르트다운 맛을 내지
못한 공허한 테크닉 이었다는 등 여러 지적이 가능하겠다. 과연, 모차르트의 음악은 평생을
투자해서 풀어야 할 숙제였다.


1991년 4월  음악저널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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