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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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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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묵은 연주평 가운데 하나


"미도리 바이얼린 독주회를 듣고"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영국에서는 처녀가 바이얼린을 배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더군다나 길거리에 바이얼린 케이스를 들고나서는 일은 "아
주 끔찍한 일"로 여겼다. 서양 음악사를 살펴보면 여성이 바이얼린 연주의 전
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거의 최근의 일이었다. 그만큼 여성이 이 악기를
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던 것이다. 체코 출신의 마조리 해이워드를 여성 바이
얼리니스트의 초기 인물로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바이얼린 세계에 여성이 등
장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시작된 이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제
금계의 상황은 오히려 여성 바이얼리니스트를 향한 조명이 더 눈부신 느낌을
갖게 한다. 그 가운데 한 인물이 {미도리}이다.

[미도리 증후군]이라고 표현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현상이 지난 19일을 전
후해서 부산에서 일어났다. 이런 현상은 기묘하게도 금년 상반기 부산에서 있
었던 어떤 연주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우리의 관심을 끈다. 지난 4월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경우에서조차 이런 현상은 없었던 것으
로 기억된다. 게다가 최근 부산에서 열린 거의 모든 공연물이 청중 동원에서
실패하여 공연계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미도리
열풍]은 분명 이변에 속하는 것이다.

미도리에 관한 일반의 인지상태는 대단히 엷은 것이었다. 좀더 직설적인 표현
을 한다면 제한된 일부 시민 외엔 거의 미도리를 모르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증후군]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던 것은 순전히 홍보의 힘이
었다. 특히 방송매체의 막강한 홍보능력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였다.

연주회가 끝난 뒤에 들은 몇 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남들 다 가는 미도리 연주
회에 우리 부부만 빠졌으니 창피해 죽겠다"는 핀잔을 아내로부터 들었다는 남
편들이 더러 있었다고 했다. 이 공연을 유치한 매니저는 방송 매체를 비롯하
여 신문, 팸플릿, 포스터, 다일렉트 메일 등 가능한 모든 홍보수단을 동원하
여 "천재 미도리"를 부각시켰고, 이것이 "천재에 약한" 우리 부모들의 심리를
자극시켜 열병이 번진 것이다.

그러나 미도리의 연주는 증후군을 일으킬 만큼의 "놀라운 천재의 솜씨"는 아니
었다. 물론 그녀의 연주는 훌륭했다. 과연 아이작 스턴이 칭찬할 만큼의 연주
를 들려주었다. 티없이 맑게 공명하는 톤, 눈부신 기교, 고집스러울 정도의 독
특한 해석, 힘의 안배를 통한 명인기적인 보잉(운궁법), 유연한 무대 매너 등
수 없이 많은 장점을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연주자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주에서 확실한 "천재의 확인"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
까?

미도리의 나이는 19살이다. 이 나이에 정 경화는 레벤트리트 콩쿨을 석권했
다. 뿐만 그 무렵 이미 정경화는 확고한 "나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기꺼이 천재의 칭호를 바친다. 물론 필자는 미도리의 음악을 의도
적으로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의도는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현대 공연 메니지
먼트를 장악하고 있는 선진국의 홍보 테크닉에 의해서 "의도된 천재들"이 양산
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인식을 갖자는 것이다.

평가의 기준에 따라 미도리 역시 천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
요한 것은 연주가에 대한 우리의 수용 형태가 이런 식의 센세이셔널리즘에 흔
들려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평범한 연주자"에 대한 애
정과도 연결되어야 할 줄로 여겨진다.

미도리 독주회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보여준 또 하나의 음악적 사건은 피아니
스트 로한 드 실바(Rohan de Silva)의 놀라운 앙상블이었다. 스리랑카 태생으
로 영국의 왕립 음악원과 미국의 줄리어드 음악대학에서 수학한 실바는 더할
나위 없는 음악의 협력자로서 미도리의 재주를 빛내고 있었다. 그가 들려준 음
악은 무엇보다도 작품에 대한 거의 완벽한 이해와 해석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바이얼린에 대한 깊은 공감, 미도리의 음악성과 그녀의 기교에 대한 철저한 적
응력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의 호흡은 미도리와 완벽하게 일치
하고 있었으며 때때로 음악적 리더쉽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음악
적 결함을 교묘하게 감싸주는 데까지 이르고 있었다. 우리 음악게게도 실바와
같은 뛰어난 반주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부산에서 그와
같은 반주를 들어본 기억은 없다. 반주 행위자는 부지기수이겠으나 진정한 의
미에서의 반주 예술가를 우리는 갖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이 발생
한 원인은 우리 음악교육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모순과 음악도 들의 일부 잘못
된 의식구조에서 찾아지리라 생각된다.

실바는 줄리어드 음악대학 재학 시절에 이미 반주자로서의 위상에 깊은 관심
을 두고 집중적인 훈련을 쌓아 왔다고 한다. 그 결과 데이빗 김, 안느 아키코
메이어스, 베니 김, 미도리 등 젊은 바이얼리니스트들의 반주자로서 활동하게
되었고, 이제는 반주자로서의 부동의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가 오늘의 이
러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당사자의 남다른 생각과 그를 가르친 훌륭한 스승
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대학에서도 이런 방면에 눈을 떠
야 한다. 피아노 학도들 중엔 반주자로서의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네 대학엔 반주를 전공한 교수를 갖고 있
지 못하다. 대학의 음악교육이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산적되어 있는 형편이긴
하지만 우수의 반주자를 길러내는 전문 교수 요원의 확보 문제는 그 중에서도
시급을 요한다고 보아진다.

미도리는 분명 뛰어난 플레이어이며 훌륭한 음악가였다. 게다가 그녀는 헌신
적인 어머니와 훌륭한 스승, 역량있는 메니저를 만나는 행운을 가졌다. 또한
그의 천부적이랄 수 있는 유연한 음악적 감수성을 갖고 있었다. 음악가로서 성
공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요건을 그녀는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
나 그녀는 아직 미완의 그릇이었다.

** 미도리 연주실황 감상 (유투브)
Sarasate - Carmen fantasy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KGVgglkA6_U

Variations on "The Last Rose of Summer" by Ernst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uA0ugX-v5NU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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