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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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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스트로, 성자의 영혼을 부활케 한다 (조선일보 / 김성현 기자)


** 사진 /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앨범 표지(도이치 그라모폰 사진)


사후(死後)에 지키는 약속도 있다. 지휘자 정명훈은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극
장 음악감독 시절 20세기 최고의 프랑스 작곡가로 꼽히는 올리비에 메시앙
(Messiaen·1908~1992)의 작품을 의욕적으로 소개하고 녹음했다. 메시앙은 정
명훈이 연주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의 악보에 '최고의 해석'이라는 문구
를 자필로 써주며 신뢰를 보냈고, 정명훈은 메시앙을 '성자(聖者)'라고 부르며
따랐다.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을 녹음하고 있던 1990년 정명훈은 작곡가에게
직접 신작(新作)을 부탁했다. 하지만 정명훈은 "당시 그에게 위촉이 너무 많았
기 때문에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고, 당연히 그가 작품에 손을 댔으리라고는 생
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1992년 메시앙이 타계하고 2~3주가 지났을 때 작
곡가의 부인이며 피아니스트인 이본 로리오(Loriod)가 정명훈에게 전화를 걸
어왔다. "남편의 책상에서 악보를 하나 발견했어요. 저와 로스트로포비치(첼
로), 하인츠 홀리거(오보에)와 당신을 위해 쓴 곡이네요!" 메시앙이 정명훈에
게 약속했던 '4인을 위한 콘서트'의 유고(遺稿)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 작품은
2년 뒤인 1994년 파리 바스티유극장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세계 초연됐다.

정명훈은 "평생 음악가로서 존경하고 따라가기를 원했던 분이 두 사람 있다.
한 명은 LA 필하모닉 부(副)지휘자 시절에 모셨던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
니(Giulini)이며, 다른 한 명은 메시앙이다. 줄리니가 내게 '목사'였다면 메시앙
은 '성자'였다. 두 분은 음악적으로도 완성되어 있었지만, 인간적으로는 더욱
훌륭했다"고 기억했다.

올해 메시앙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정명훈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작곡가의 관현
악을 지휘한다. 29일 메시앙의 대표작인 '투랑갈릴라 교향곡'을 서울시향과 연
주한다. 정명훈은 인터뷰에서 "메시앙은 한평생 자신의 믿음을 음악으로 표현
했다. 그는 단 1초도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흔들리
고 있는데…"라며 존경을 표했다.

1989년 정명훈이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작곡
가가 객석에서 귀를 기울였다. "제 생각엔 당시 제 연주가 별로였는데, 메시앙
은 콘서트가 끝난 뒤 찾아와서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는 처음'이라고 말
했죠. 저는 '농담인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매번 찾아올 때마다 같
은 말을 했어요. 억지로 지어내는 칭찬이 아니라 언제나 사물을 따뜻하고 긍정
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정명훈은 "메시앙 같은 삶의 표
본이 있었기에 쫓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정명훈은 오는 4월부터 프랑스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함께 메시앙의
주요 관현악을 1년 내내 조명할 계획이다. 공연만 6시간이 걸리는 대작 오페
라 '아시시의 성(聖) 프란체스코'도 10월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한다. 정명훈
은 "너무 길어서 악보만 책 8권에다가 무게만 25㎏에 이른다. 연주 이전에 들
고 다니는 것부터 걱정"이라며 웃었다.

평소 메시앙이 그를 어떻게 불렀는지 궁금했다. 정명훈은 "창피하게도 '마에스
트로'라고 불러줬다"고 했다. 그는 메시앙을 뭐라고 불렀을까? 대답은 간단했
다. "저는 부를 수도 없었죠. 그냥 쳐다보기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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