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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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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문화 삼켜 버린 인터넷 - 인터넷 시대의 대중문화

서 동 진 (문화비평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되어버린 대중문화

대중문화 속으로 인터넷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인터넷이 대중문화를 삼켜 버렸다. 적어도 한두어 해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대중문화에 기생하는 더부살이적 존재처럼 보였다. 공연 평을 보고, 곧 개봉할 영화들의 리뷰를 읽고, 신간 소개를 열람하는 그리고 고작 쉬이 구하기 어렵던 외국의 음반이나 책을 구입하는데 요긴한 손발이 되어주는, 그저 신통하고 편리한 매개체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은 미래학자의 책에서나 볼 수 있던 먼 미래의 꿈같은 이야기를 하루가 다루게 쏟아내고 있다. 주문형 오디오와 비디오는 이제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컴퓨터로 사이버 극장을 찾아 들어가 가능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전자 리모콘의 역할을 하는 마우스만 제 손에 쥐고 있으면 간단한 몇 번의 동작으로 영화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전 세계의 뉴스를 동시에 읽어볼 수도 있다. 그리고 편지를 쓰거나 다른 문서를 작성하면서 샌프란시스코나 런던의 어느 인터넷 방송국에 접속해 자신이 좋아하는 트립합(trip-hop)이나 앰비언트(ambient) 뮤직을 지겹도록 들을 수도 있다. 조금만 더 품을 들인다면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70년대 어느 시절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주는 채널을 찾아내 물리도록 들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번쩍 뜨이는 영화나 음반이 있으면 신속하게 그 자리에서 구매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인터넷은 대중문화가 가지는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죄다 디지털 신호로 번역하여 자신의 컴퓨터에서 재생한다. 하지만 전화선이나 광케이블에 연결되어 있는 이 조그만 수신 재생장치는 시공간을 뛰어넘고 그것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편집하여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과 대중문화의 관계를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에도 금이 가기 시작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또 얼마간 설레기도 하는 물음이 꼬리를 물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과 대중문화의 단성생식

물론 대중문화와 인터넷이 서로 다른 두 가지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놓을 수도 없다. 인터넷은 무한한 사용자들이 자신의 컴퓨터로 접속하여, 상상할 수 없는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과 자리에서 비동시적으로 디지털신호를 주고받는 네트워크 그 자체이며 또 가상세계이다. 물론 대중문화의 기본적 특성 가운데 하나가 매체를 통해 유통되고 즐겨지는 문화란 점에 있다면 그것 역시 가상세계이며 가상신체에 바탕한 것이다. 이를테면 마이크로폰이라고 하는 귀의 연장 혹은 가상 귀가 연주를 녹음하고, 그것을 자기 테이프에 보관하여 복사한 후 테이프나 씨디로 만들어내고, 그것이 얼마 후 우리 주머니 안의 자그마한 휴대용 녹음기라는 가상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이 때도 역시 우리는 분명 가상세계, 가상신체를 접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어느 녹음 스튜디오와 지금 그 음악을 듣는 내가 사는 서울 사이의 공간적 차이와 그 사운드가 연주될 즈음의 시간과 그것을 듣는 나 사이의 시간적 차이가 자의적으로 - 적어도 내가 기분이 내키고 또 그만큼의 여유가 된다면 마음대로 그 음반을 구입할 수 있고 또 내가 언제 어디에서나 내 마음대로 그 휴대용 카세트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것을 재생할 수 있다는 뜻에서 - 일치될 수 있는 이런 동시성(同時性)/동연성(同延性)은 가상세계에 다름 아니다. 나는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지금의 현재를 만들어 낸다. 내가 듣는 음악은 어느 녹음실에서 연주될 때 의미값이 제로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저 무의미한 소음 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이 음반 평론가들이나 디스크자키 혹은 방송사의 피디에 의해 들려지고 또 허다한 네트워크 속에서 감상되고 평가되면서 그것은 차트에 오르고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축적되고 합성된다. 그렇게 합성된 정보들은 곧 그 사운드에 대한 의미를 만들어 내고, 그 음반을 듣는 이들이 그 사운드를 독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며칠 전 여의도의 어느 구체적인 공개홀에서 이뤄진 녹화방송을 며칠 뒤 저녁 시간대에 전국에서 동시적으로 시청하는 것 역시 가상세계이다. 전화선을 통해 멀리 떨어져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어 내는 정보교환과 친밀함의 세계 역시 가상세계이다. 그만큼 통신수단과 전자정보매체는 모두 가상세계를 우리 삶에 흩뿌려왔고, 우리는 그 가상세계를 적어도 물리적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각적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 왔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의 가상세계는 그런 가상세계의 확대이거나 아니면 화려한 종합일 뿐 전연 다른 어떤 가상세계, 가상세계에 크게 오염되지 않은 현실세계를 마침내 침범하고 정복한, 전에 없던 생면부지의 가상세계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문화가 차지하고 농락하여 온 그 가상세계 더하기 현실세계의 반죽된 세계가 곧 인터넷의 세계와 곧바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가 가상세계에 빚을 지고 또 그 덕택에 변천하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처럼 자신을 전적으로 가상세계로 선언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가상세계를 통해 존재하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현실세계인 척 굴어왔다. 대중문화는 그런 가상세계 속에서 거주하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현실세계의 한 부분으로 스스로 믿어왔고 또 우리 역시 감쪽같이 믿고 있다. 그 탓에 대중문화의 인터넷 속으로의 진입은 현실세계의 가상세계로의 이주처럼 보인다. 마치 인터넷의 외부에 존재하던 대중문화가 이제 인터넷에 의해 정복되고 합병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짚어본 것처럼 사실 대중문화 역시 가상세계를 통해 존재하였다면 인터넷과의 합병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뒤섞임이라 보기 어렵다. 외려 소박한 가상세계 혹은 현실세계인 척 하고 있던 가상세계로서의 대중문화가 순수한 가상세계인 인터넷에 의해 그 정체가 탄로나고 또 자신의 가상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문화와 인터넷의 결합은 이질적인 것의 혼성교배라기 보다는 동종끼리의 단성생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인터넷과 대중문화는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습관에서 헤어날 수 없다. 이를테면 대중문화는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이트 가운데 한 디렉토리, 한 지역, 한 공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인터넷이 제공하는 어떤 정보의 종류로서 대중문화가 존재할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우리가 인터넷 검색엔진에 들어가면 어디에서나 대중문화란 항목을 만날 수 있고, 거기에서 우리는 다시 촘촘하게 나뉘어진 하위 항목을 볼 수 있다. 만화, 대중음악, 영화 등의 하위 항목이 있고, 또 그 밑에는 다시 순정만화, 학원만화, 일본만화 등이나 한국의 대중음악, 70년대의 대중음악 등으로 분류된 항목들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짐을 볼 수 있다. 그처럼 인터넷 속에서 대중문화는 자신의 가상적 성격을 박탈당하고 이제는 현실세계에서 온 척 간주되고, 자신은 경제나 정치의 정보처럼 정보의 분류 체계 속에서 대중문화라는 류(類)의 범주에 묶인 정보의 다발이 되어버린다. 물론 그 다발은 현실세계이고 그 현실세계의 정보를 번역한 디지털 신호의 다발이란 점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결국 인터넷에서 대중문화는 현실세계의 위치에 있게 된다.

이런 점이 우리가 인터넷과 대중문화의 관계를 쉬이 단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대중문화와 인터넷은 가상세계에 터를 잡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대중문화는 또 현실세계의 위치를 떠맡도록 요구받는다. 전면화된 가상세계인 인터넷에서 대중문화는 다른 현실세계의 존재들이 그런 것처럼 현실세계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정보들로 자리매김된다. 이런 점에서 대중문화와 인터넷은 같은 것이면서도 다른 것이라는 역설에 빠진다. 우리는 그런 역설이 그저 말장난에 가까운 논리적 자가당착이 아니라 바로 인터넷과 대중문화가 맺는 관계의 역설이며 또한 인터넷에서 대중문화가 움직여갈 행로를 예시하고 있다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대중문화의 향수병

우리 주변의 인터넷에서 대중문화는 현실세계의 대중문화의 논리를 천연덕스럽게 연장한다. 이는 인터넷의 대중문화가 자신이 현실세계로부터 왔음을 잊지 않으려는, 즉 자신의 고향을 지우지 않으려는 저항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현실의 대중문화에 대해 인터넷은 일종의 부가물, 그것을 더 잘 활용하는 보조적이고 효과적인 덧붙여진 도구로 보는 관점을 고수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인터넷의 수많은 대중문화 사이트가 대개 비평적 지식과 정보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세간에 잘나가는 대중문화 관련 사이트들은 내노라하는 비평가들이나 말솜씨 좋은 논객들이 달려들어 대중문화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인터넷에서 대중문화는 현실의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가정이 득세하고 있는 셈이다. 대중문화가 만들어 내는 현실의 사운드, 이미지, 공연, 그리고 그것과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직접성이 언제나 그런 가정 속에 숨어있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은 아무런 직접적 현실성을 갖지 않는 것, 그래서 그것에 빚진 채 그것의 전후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을 겸손하게 주장한다. 이를테면 대중음악에 관련된 사이트들을 보면 우리는 쉬이 그런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를테면 매우 근사한 대중음악 비평 사이트인 ‘웨이브’(http:// www.weiv.co.kr)나 ‘가슴’(http://www. gaseum.co.kr)같은 사이트를 들여다 보자. ‘웨이브’는 서구 대중음악 특히 영미의 대중음악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을 제공한다. 이스트코스트 힙합이나 웨스트코스트 힙합이나 미국 흑인음악의 역사이니 하는 제법 어렵고 묵직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가슴’의 경우도 비슷하다. 여느 웹진이나 정보사이트처럼 최신 음반이나 공연에 대한 평론과 더불어 특집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애정을 보이며 나름의 심미적 기준에 따라 한국 대중음악의 대표 음반들을 선별하고 그에 대한 평론을 싣는다. 물론 대중음악 사이트 가운데 다른 성격의 사이트들도 많이 있다.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부류의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음악 서비스 사이트도 있고, 또 인터넷 라디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이트들 역시 겸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인터넷이 값싸고 쉽고 자기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을 빼면, 인터넷은 현실세계의 대중음악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에 다름아니라 속삭이며 자신을 낮춘다. 음악파일이 저장되어있는 그 어떤 호스트 컴퓨터의 디렉토리는 집안에 놓여있는 조그만 재생장치(라디오나 오디오)와 다를 바 없고, 우리는 리모콘이나 재생버튼 대신에 마우스를 클릭하면 될 뿐이다.

그런 사소한 차이는 지금 인터넷으로 이주한 대중문화의 겸손함이자 또한 우스꽝스러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인터넷의 그 잠재성, 괴물과도 같은 변형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터넷에서 대중문화는 계속 인터넷 바깥의 현장을, 그 사운드, 이미지가 속해있던 본래의 고향을 가정한다. 그런 향수병이 없으면 인터넷에서의 대중문화는 자기정체성이란 것이 마치 없어지기라도 하는 듯 잔뜩 겁을 집어먹는다. 대중문화는 인터넷에게 자신이 주인이고, 인터넷은 그것을 가속시켜주고 또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주는 도구로서의 이차적 역할에 순종할 것을 명령한다. 그것은 대중문화의 고향인 진짜 살아있는 생생한 직접적 체험의 공간, 연행자가 살아 숨쉬며 공연을 펼치는 그 곳의 신성한 일차성을 넘보지 못하도록 경고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이런 비슷한 에피소드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현장성, 직접성, 자연성, 핍진성 같은 가치를 내세우며 녹음실로, 스튜디오로 들어간, 복제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들어간 이들이 비난을 들었고 또 그런 비난은 하나의 훌륭한 이데올로기가 되어 대중문화를 읽는 눈금이 되어 주었다. 항구도시 리버풀의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허름한 술집에서 언제나 라이브로 공연하던 야성적인 록큰롤 밴드인 비틀즈가 미국 순회공연에서 보수주의자들의 야만스런 비난에 쫓겨 들어간 곳은 더 이상 라이브의 현장이 아니라 런던의 애비 로드에 있는 스튜디오였다.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자신의 파트를 연주하고 그들은 직접적인 교감과 청중과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잃은 채 각기 하나의 트랙이 되어 버렸고, 그렇게 쌓여진 트랙이 하나의 음반으로 만들어져 대중들의 손에 전달되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목청을 돋우며 말했다. 이제 비틀즈는 죽었고, 록큰롤 역시 죽었다고. 비단 이는 대중음악에 한정되는 일이 아니다. 앤디 워홀의 공장(팩토리)도 역시 그런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사흘밤낮 축제가 계속되고 모두들 흔연히 하나의 작은 해방구를 만들어냈던 ‘우드스톡(Woodstock)'이란 페스티벌을 그리워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향수병이라 부를 수 있고, 그것이 대중문화의 중요한 강박관념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강박관념으로서의 향수병은 인터넷 시대의 대중문화에서도 여실히 반복된다.

공포인가 즐거운 선택인가

하지만 인터넷은 대중문화를 바꿔놓고 있고 또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모든 정보는 디지털 정보로 그리고 그 정보를 기록하고 보관하고 저장하고 분배시키는 다양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각종의 파일 형태로 번안된다. 즉 인터넷에서 대중문화는 모두 추상적인 디지털 정보로 번역되고, 다시 그 정보는 파일의 형태로 개체화되어 그 어느 곳에 보관된다. 물론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빼낼 수 있고, 자기 컴퓨터로 이동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그 파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내 컴퓨터에 복사되어 다시 한 개의 개체를 불렸을 뿐이다. 그렇게 전달되고 복제된 정보는 또 누군가에 의해 또 다시 변형될 수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르고 이어 붙여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고, 누군가는 유사한 사운드의 목록을 수집하고 그를 통해 작은 가상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동호회일 수도 있고, 팬클럽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강력한 사회적인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모습을 인터넷 이전의 대중문화에서도 보아왔다.

이제 인터넷은 그런 대중문화의 풍경을 예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일상적인 모습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취향의 평준화를 가져옴으로써 고매하고 숭고하거나 탁월한 가치를 갖는 문화를 질식시킨다는 비난을 항시 들어왔다. 그것은 지킬 가치가 있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비난이기도 하고 또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에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한다는 데 대한 비판의 의미에서 행해진 비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제 인터넷은 다른 뜻에서 취향의 평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하나의 큰 덩어리로서의 대중이 아니라 수없이 잘게 쪼개진 대중들의 취향이 어떤 표준적이고 규범적인 취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을 기다리지 않은 채 제 스스로 취향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믿을 만한 취향, 가치있는 취향에 따르지 않은 채 자신의 취향과 같이 호흡할 이를 찾아 나서고 그를 찾아내기 위한 둥지를 만든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고 이들이 청중을 형성한다. 이미 컬트파나 매니아들은 더 이상 대중문화를 즐기는 데 있어 유별난 부류의 낯선 사람들이 아니다. 지배적인 선택(표준적인 취향이란 의미에서 음반 차트나 가요톱텐같은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유행으로서의 취향)을 거스르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취향을 만들어갈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걱정할 일은 인터넷의 괴력에 대중문화가 휘둘릴 것이라는 기우가 아니다. 이미 대중문화와 인터넷은 가상세계라는 점에서 다른 몸이 아니었다. 이제 정작 걱정할 것은 그런 자신의 취향을 찾기 위해 그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빚어내야 하는게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는 어떤 정박점도 없이 인터넷을 항해하며 자신의 몸에 맞는 어떤 취향을 맞춤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망망 대해의 정보 바다, 거대한 데이터 베이스로 화한 인터넷 속에서의 불안한 항해가 될 것이다. 이제 인터넷은 취향과 그를 택한 이의 본성 사이에 남은 모든 끈마저 모조리 끊어버리고 말 그대로 취향을 순수한 선택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누구의 취미란에 무심하게 끄적여진 독서나 영화감상 대신에 우리는 아주 색다른 항목들을 채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취미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보의 검색과 조합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넘어서서 무한히 만들어질 가능성의 문턱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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