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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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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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The rite of spring)



◆ 사진 / 스트라빈스키, 니진스키

◆ 유투브 감상
초연 100주년기념공연실황, 니진스키 안무 복원공연
지휘 발레리 게르기에프, 마린스키 극장 관현악단과 발레단
http://youtu.be/YOZmlYgYzG4

악마와도 같은 봄의 제전을 누가 만들었는가?
도대체 누구에게 이딴 것을 쓸 권리가 있단 말인가!
무력한 우리들의 귀를 거역하고 소음을 마구 내던질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더욱이 이것을 봄의 제전이라 하다니!
봄이란 무릇 기쁨으로 날개치고, 새들이 상쾌하게 재잘거리는 계절이 아닌가.
‘봄의 제전’을 쓴 인간은 (만약 나의 바람이 그른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교수형에 처해야 하리라!
-1924년 보스턴 공연 이후 보스턴 헤럴드 지에 실린 풍자시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된 발레음악 작품이다. 태고 원시 부족이 봄
을 맞아, 긴 겨울 잠에서 깨어나는 대지의 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표현한 음악
이다.​ 러시아의 원시적인 종교 제전을 배경으로 한, 복잡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리듬과 원시주
의적 선율과 리듬이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 음악이다. 당시로서는 물론이고 현재의 기준으로도
대단히 전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곡으로, 초연 때 청중들의 폭동에 가까운 격렬한 거부 반응
으로 인해 유명세를 얻은 곡으로도 유명하다.

스트라빈스키의 전작 발레곡 '불새(1910)'나 '페트루슈카(1911)'도 러시아 민화를 소재로 하고
러시아 전통음악 요소들을 자신의 전위적인 면모와 적절히 조합해서 기존의 전통적 화성으로
만들어진 음악에 길들여져 있었던 청중들에게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 작품은 많이
달랐다.

1910년 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첫 번째 발레음악인 <불새>의 작곡을 마쳤을 무렵, 스트라
빈스키의 머릿속은 이미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했다. 그 구상이란 이교도들의 엄
숙한 제전을 무대 음악으로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그 제전은 봄의 신에게 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었고, 그 의식에서 이교도들은 늙은 현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제물로 간택된 소녀가
죽음에 이르도록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세 번째 발레음악인 <봄
의 제전>의 제재가 된다.

스트라빈스키는 곧 친구인 화가 니콜라스 뢰리히(Nicholas Roerich)를 찾아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뢰리히는 샤머니즘에 각별한 관심과 애착을 가진 화가였고 슬라브의 민속에도 조
예가 깊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한 뢰리히는 강한 의욕을 드러내며 대본 작업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 해 여름, <불새>의 초연을 위해서 파리를 방문한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뤼스>의
단장 디아길레프에게 새 발레 곡의 구상을 설명했다. 스트라빈스키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불새>의 초연과 후속 공연들을 무사히 치르는 일이 우선이었다. 이런 이유
로 <봄의 제전>의 작곡은 지연되었다.

1911년 여름, 대본이 마련되면서 작업은 본격화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뢰리히와 협력하여 상
세한 시나리오와 제목을 정했고, 세부의 악장들을 현재의 순서로 배열했다. 그 과정에서 고대
슬라브 부족의 제의에 관한 뢰리히의 풍부한 지식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13년 3월, 마
침내 총보가 완성되었고, 디아길레프는 초연을 추진했다. 총보는 <페트루슈카>를 지휘했던 프
랑스의 지휘자 피에르 몽퇴에게 전해졌고, 안무는 바로 전 해(1912년)에 <목신의 오후>로 파
리 문화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천재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에게 맡
겨졌다. 그러나 막상 스트라빈스키가 내민 악보를 받아든 니진스키는 이전의 곡들보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거절하려고 했다고 한다. 결국 비교적 규칙적인 박자와 템포에 맞춰 안무
를 짜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거친 폭력과 성적인 요소를 더한 상당히 '날것의' 춤을 무용수들
에게 요구했다.

곡이 어려워서 힘들어했던 것은 안무와 무용수들 뿐 아니라 관현악단도 마찬가지였는데, 지휘자
피에르 몽퇴는 평소에 한두 번 연습하고 공연에 임했던 발레나 오페라 반주 관현악 리허설의
관례를 깨고 열여섯 번의 강도 높은 리허설을 했다. 이렇게 많은 연습량과 강도는 <발레 뤼
스>도 마찬가지였고, 적어도 초연 직전까지는 모든 준비가 차질 없이 행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1913년 5월 29일에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이 행해졌는데, 바순 솔로가
극단적으로 높은 음역에서 시작하는 서주 부분부터 청중석에서는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 가락을 클라리넷과 잉글리시 혼이 받을 즈음에는 대놓고 욕설과 비난의 소리가 나오기 시
작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공연은 계속되었고, <봄의 태동 : 젊은 여자들의 춤>에서
현악기와 호른의 거친 리듬이 들려올 즈음에는 고함과 야유가 크게 터져 나오다 못해 야유하
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도 곡을 옹호하는 몇몇 청중들이 있었는데, 이들과 시끄럽다고 짜
증내는 청중들 사이의 멱살잡이와 주먹다짐까지 있었다.

◆ 초연 스캔들의 상세한 내용
그 유명한 소동은 생각만큼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트라빈스키의 혁신
적인 음악에 대한 반응이었다기 보다는 발레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송두리째 뒤엎은 니진스키
의 파격적인 안무가 야기한 관객들의 거부감과 혼란, 그리고 그러한 결과를 뻔히 내다보고서
공연을 강행했던 디아길레프의 흥행 전략이 빚어낸 한바탕의 해프닝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가 쓴 회고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자. 우선 서주에 이어
막이 오른 다음부터는 객석에서 일어난 엄청난 소음 때문에 음악에 제대로 귀 기울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따라서 관객들은 주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시각적 자극에 반응했고, 단속
적으로 들려오는 음악은 그저 그런 분위기를 돋워주는 소음에 불과했다. 그 혼돈 속에서 디아
길레프는 한 술 더 떠 객석의 조명을 켰다 껐다 하면서 관객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소란을 더
욱 증폭시켰다. 그래 놓고 공연 후에 모든 것이 자신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졌다며 만족스러워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 시절 파리에서 공연 중에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장 콕토
는 이렇게 회상한 바 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그곳은 온갖 스캔들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요란하게 치장한 멋쟁이들, 탐미주의자, 속물주의자, 초속물주의자, 반속물주의자 등등 오만가
지 인간 군상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곳에서 희대의 센세이션을 일으켜 공연장에 더 많은 사
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디아길레프의 의도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초연은 격렬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며 화제를 모았고, 덕분에 후속 공연들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갈수록 반
대파는 줄어들었고, 세 번째 공연에서는 항의는 거의 없이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상황이 거의 폭동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한 극장 관계자들은 경찰을 불렀는데, 경찰들도 1
부가 끝나고 나서야 극장에 출동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있었다고 한다.
어찌됐건 첫 공연은 소란과 별도로 중단 없이 마무리되었는데, 다음 날 신문엔 스트라빈스키
를 비롯한 관계자들에 대한 엄청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생상스는 스트라빈스키가 음악 공
부를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대놓고 질타했고, 평론가들은 이 춤을 “봄의 학살”이라고 깎아내
렸다. 후속 공연 일정을 취소하라는 협박조의 투서가 날아들기도 했다.

그러나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주요 스탭들은 전혀 꿈쩍이지 않고 예정된 나머지 5일 동안의
공연을 속행했고, 청중들도 첫날과 달리 큰 소요 없이 관람했는데, 첫 공연에서 벌어진 대소
동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객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사실 초연 당시에도 스트라빈스키
는 니진스키, 무용수들과 함께 관객들 중에서 갈채를 보내는 이들을 위해서 수차례 불려 나가
답례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잔뜩 화가 나있었는데, 니진스키의 얼토당토않은
안무와 자신의 음악을 가려버린 관객들의 무분별한 반응에 엄청나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음악은 니진스키의 혁명쩍 안무와 디아길레프의 속물적인 이익에 철저히 이용당한 꼴이
돼버렸다. 그는 나머지 공연에 참석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계속 엇갈린 비평이 쏟아져 나왔고, 그 뒤로 유럽 각지와 미국에서 연주되었을 때
도 한동안은 계속 찬사와 비난이 엇갈렸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논란이 노이즈마케팅이 되어
흥행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120회 이상의 리허설을 거쳐 완성된 <봄의 제전>은 파
리와 런던에서 단 8회 공연된 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과 관련된 논란은 점차 이 작품의 작품성을 긍정하는 쪽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극한의 리듬감과 분절적이고 타악기적인 음향, 기존의 화성체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귀를 찢을 듯한 불협화음 등의 작곡수법은 초연에서는 음악을 모독했다며 크게 비난
을 받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새로운 음악적 경향을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으며 점차
다른 작곡가들도 이런 수법들을 차용하기 시작하였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가운데 최고의 걸작중 하나이자 20세기의 음악 가운
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여전히 이 음악을 바탕으로 한 발레공
연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고, 쇼스타코비치, 바르톡 등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이 작품을
참고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 봄의 제전의 안무가 니진스키(Vaslav Nijinsky, 1890-1950)
<무용의 신>이라 불려지며 20세기 최고의 발레리노라는 명예를 얻으면서 무용수로서의 명성
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니진스키는 안무를 시작했다. 1912년과 1913년 사이에 <발레 뤼스>의
창설자 디아길레프의 격려를 받으며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1912), <유희>(1913), <봄의 제
전>(1913)을 잇달아 안무했다. 그러나 어느 하나 인정받지 못했다. 스타 발레리노가 안무가로
새로운 길에 나섰지만, 그 결과는 대중들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니진스키의 동료들 역시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와 작업한 작곡가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는 공개적으로 니진스키를
비판했으며, 이는 니진스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스트라빈스키는 한참 후에야 안무가 니진스
키를 인정했다). 아카데믹 발레로 훈련된 무용수들은 비-발레적이고 불편한 동작을 강요하는
매우 어려운 리허설에 강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믿었던 디아길레프마저 잇단 흥행 실패에 몸
을 사리며 니진스키가 맡기로 약속된 작품을 다른 이에게 넘겼다.

결국 니진스키는 <봄의 제전> 초연의 대소동으로 몰락했다. <봄의 제전>은 그의 경력뿐 아니
라 그의 인생마저 무너뜨렸다. 니진스키의 전기 작가 리처드 버클(Richard Buckle)은 그의
생애를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고, 그리고 나머지 30년은 암묵 속에 가려
진 육십 평생”이라고 요약했다. 니진스키는 전성기 이후에도 30년을 더 살았지만, 정신요양원
에 갇힌 땅딸막한 중년 남성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죽자 마치 기다
렸다는 듯이 그에 관한 책과 영화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고흐가 죽은 후에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듯 또 하나의 ‘천재의 전설’이 그제야 완성된 것이다.

디아길레프는 초연으로부터 7년이 지난 1920년 이 작품을 무용으로 다시 무대에 올렸다. 화
가 니콜라이 레리히가 만든 무대장치와 의상을 보관해왔던 그는 마신(Léonide Massine)에게
새롭게 안무를 맡겼다. 당시 니진스키는 정신병 때문에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고, 무용수들 중
에서는 누구도 니진스키의 복잡한 안무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신은 농민의 단
순한 윤무를 기본으로 안무해 성공을 거뒀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
과 달리 니진스키의 안무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마신 버전의 <봄의 제전>은 이후 1956년
까지 서구의 발레단에서 몇 차례 더 공연됐다.

니진스키의 안무를 복원하는 움직임도 1980년대 후반 들어 진행되고 있는데, 다만 공연 당시
의 사진이나 무용단 소속 생존 무용수들의 증언 등의 단편적인 자료로만 재현하는 데는 한계
가 있어서 안무가 개개인의 재해석이나 보완이 곁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가운데 미
국의 무용사학자이자 안무가였던 밀리센트 허드슨(Millicent Hodson)이 남편이자 미술사가인
케네스 아처와 함께 1987년에 조프리 발레(Joffrey Ballet)에서 니진스키의 안무를 복원했다.
1971년 조프리 발레의 단장인 로버트 조프리와 허드슨의 대화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꼬박 16
년이 걸렸다. 스트라빈스키가 악보 위에 휘갈긴 움직임 기록, 관객이 객석에서 연필로 그린
스케치, 리허설 감독이었던 마리 램버트의 악보 기록 등 다양한 사적 기록물과 인터뷰를 바탕
으로, 수년간의 연구와 고증을 통해 근거 있는 유사품이 등장한 것이다. 그 외에는 곡의 전위
성에 안무가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한껏 끌어올려 무용수가 변기통을 붙잡고 구토를 하는 등의
행위예술에 가까운 안무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격동하는 불협화음과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원시적 주제는 안무
가들을 매혹했다. 세계적인 안무가 한스 반 마넨, 마사 그레이엄, 폴 테일러, 피나 바우슈, 모
리스 베자르, 존 노이마이어, 제임스 쿠델카, 자비에 르 로이, 마리 쉬나르, 사부로 테시가와
라, 앙줄랭 프렐조카주, 테로 사리넨 등 수많은 대가가 <봄의 제전>을 재해석하기 위해 경합
을 벌였다. 지금껏 150편 이상의 재해석이 등장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이 작품은 안무가의 통
과의례라고도 할 수 있겠다.

◇ 악곡의 구성
<봄의 제전>은 늙은 현자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은 이교도들이 젊은 처녀가 죽음에 이르
도록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미지에서 탄생했다. 스트라빈스키와 고대 슬라브 문화에 정통
했던 화가 니콜라이 레리히가 구상했는데,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타악기가 불규칙하게 휘몰
아치고 레리히의 무대장치는 황량하고 투박했다. 1부 ‘대지에의 찬양’에서 삼삼오오 모인 무용
수들은 다양한 원시적 제의를 묘사했고, 2부 ‘희생’에서는 풍요와 다산을 위해 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 잠든 대지와 생명력을 깨우는 봄의 의식은 문명사회에서 잊힌 원초적 욕망을
드러냈다. 무용수들은 남녀 구분이 없는 의상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에 구부정한 자세, 각진
팔과 안짱다리로 땅을 굴렀다. 선택된 자는 옥죄어오는 큰 원 속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
다가 느닷없이 발작적으로 뛰어오르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1부와 2부로 나뉘며, 모든 표제는 프랑스어로 기입되어 있다.
1부: 대지에 대한 찬양 (Première Partie: L'adoration de la Terre)

제1곡 서주 (Introduction)
그로테스크한 바순으로 시작되는 분위기는 상당히 음산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봄이란 이
미지와 처음부터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 호른, 클라리넷은 상당히 위협적인 분
위기를 조장해서 더욱 분위기가 무서워진다. 리듬과 선율이 더욱 변형되고 얽히면서 점점 더
으스스해진다.

제2곡 봄의 태동, 젊은 여자들의 춤 (Les Augures Printaniers: Danses des Adolescentes)
봄의 싹틈과 젊은 남녀의 춤, 스타카토로 이루어진 강렬한 현과 금관의 총주는 매우 자극적이
다. 바순의 무뚝뚝한 주제가 강렬한 리듬을 타고 나타나며 이후에 리듬은 다소 약해진다. 드
디어 호른의 주제가 드러나면서 더욱 리듬은 분화된다. 이에 플루트와 바이올린 바순이 더해
지면서 격렬해진다. 아울러 음량도 증폭되면서 트럼펫도 가세하는 동안 다음 곡으로 넘어간
다.

제3곡 유괴 의식 (Jeu du Rapt)
역동적인 곡이며 팀파니와 금관 등으로 긴박감을 유발시키고 있지만 조그마한 총주를 거치면
서 다시 플루트와 피콜로, 바이올린에 의해서 서서히 나아간다. 선율의 변화가 심하고 역동적
인 모습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제목에서 풍기듯 음악 자체도 매우 자극적이며 빠르게 진행된
다.

제4곡 봄의 윤무 (Rondes Printanières)
플루트 등에 의해서 트레몰로의 반주로 클라리넷이 제3곡과는 달리 나긋하게 봄의 노래를 부
르고 있다. 이러한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주제는 이 곡의 마지막에서도 다시 쓰이고 있다. 뒤
를 이어서 현의 암울한 반주 사이로 음산한 봄 기운이 퍼진다. 오보에와 플루트가 차례로 다
양한 주제를 풀어헤친다. 다시 포르티시모로 금관과 팀파니가 총주를 이루면서 매우 강인한
분위기로 바뀐다. 총주를 지나면 다시 최초의 분위기로 클라리넷이 이끌고 있다.

제5곡 적대하는 두 부족의 의식 (Jeux des Cités Rivales)
팀파니와 금관의 강렬한 선율이 반복되고 있으며 역시 격렬하게 밀어부치는 힘을 느낄 수 있
다. 트럼펫이 담당하는 선율과 현이 맡고 있는 선율이 서로 교묘하게 섞이고 있다. 이는 바로
경쟁적 관계에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제6곡 현자의 행렬 (Cortège du Sage)
바순과 저음 현의 리듬 밑에서 튜바 등이 무서운 선율을 노래하고 있다.

제7곡 대지에 대한 찬양 (Adoration de la Terre)
총주가 끝난 뒤 1마디가 멈춘 뒤에, 단 4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제8곡 대지의 춤 (Danse de la Terre)
급박한 분위기의 춤을 반영하듯, 매우 기괴한 분위기를 통해서 제 1부를 마무리 짓는다.

2부: 희생제 (Seconde Partie: Le Sacrifice)
제1곡 서주 (Introduction)
서주 1부는 낮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반면 2부는 밤을 묘사하고 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음산한 분위기로 이교도들의 밤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부분은 무조성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
기므로 인해서 매우 현대적인 감각을 표출하고 있다. 고즈넉하게 울리는 악기들의 음색은 더
욱 제사에 어울리는 밤을 묘사하고 있다.

제2곡 젊은 여자들의 신비한 모임 (Cercles Mystérieux des Adolescentes)
젊은이들이 모여 희생이 될 처녀를 고르는 내용이다. 현에 의해서 신비스런 분위기를 암시하
고 있으며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거치고 다시 현의 피치카토를 통해서 몽상적인 분위기를 묘사
한다.

제3곡 선택받은 여자에 대한 찬미 (Glorification de l'Élue)
리듬감이 자유분방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곡으로 팀파니와 목관, 금관의 울부짖음은 거의 광기
처럼 들린다. 난잡한 느낌이 들지만 매우 정교하게 처리되고 있고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틀에 박힌 일정한 선율이 아니라서 당혹스런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이런 부분들에 의해서 더
욱 원시적인 야만성이 부각된다.
제4곡 조상에 대한 초혼 (Evocation des Ancêtres)
조상의 영혼을 부르는 장면으로 강렬한 총주로 시작된다. 반복되는 특징적인 선율을 사용해서
영혼을 부르는 주술이 가득 담겨져 있다.

제5곡 조상에 대한 의식 (Action Rituelle des Ancêtres)
피아니시모의 저음으로 현과 타악기에 의해서 시작된다. 또한 잉글리쉬 호른에 의한 피아노
역시 더욱 기괴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러나 트럼펫에 의한 선율은 다시 희생된 제물(처녀)를
조상의 영혼이 받아주기를 간절히 빌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총주를 거쳐서 다시 잉글리
쉬 혼에 의한 차분한 분위기로 되돌아온다.

제6곡 신성한 춤 (Danse Sacrale)
희생의 죽음을 묘사하는 선율과 광폭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선율이 팀파니의 강한 타격으로 곡
은 점점 더 클라이막스로 향해간다. 매우 신경질적인 느낌의 트럼펫과 그 배경의 저음의 현은
매우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피콜로 역시 다분히 공격적인 성향을 증가시키고 있다. 희생물이
죽자 이를 조상의 영혼이 태양의 신에게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다.

저마다 다른 리듬형, 조성이 복잡하게 얽히는 복리듬(Polyrhythm)이나 복조성(Polytonality),
단음정이나 증음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겹치게 만들어 노골적인 부딪힘을 얻는 불협화음 등이
전위적인 느낌을 조성하는 핵심적인 작곡 기법인데, 물론 이런 요소들이 스트라빈스키 시대에
갑자기 등장했다거나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만들어낸 독자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조성감을 뚜렷하게 유지하면서 양념처럼 넣어 텐션 조절에 쓰였던 예전의
용법과 달리, 이 곡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오히려 주를 이루고 있어서 명확한 조성감도, 그
렇다고 규칙적인 박절법이나 리듬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게 꾸며져 있다. 이 때문에 당대 안무
가들은 여기에 안무를 어떻게 붙여야 할 것인가를 미친 듯이 고민해야 했고, 관현악단도 너무
자주 바뀌는 박자나 강약, 빠르기에 갈짓자 걸음을 걷는 경우도 허다했다.

◇ 악기 편성
관현악 편성도 기존 발레에 동원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크다.
목관: 피콜로, 플루트 3(3번 주자는 피콜로를 겸함), 알토 플루트, 오보에4(4번 주자는 잉글리
시 혼을 겸함), 피콜로 클라리넷(D), 피콜로 클라리넷(E플랫), 클라리넷(A)3(3번 주자는 베이스
클라리넷을 겸함), 클라리넷(B플랫)3(3번 주자는 베이스클라리넷을 겸함), 베이스클라리넷2, 바
순4(4번 주자는 콘트라바순을 겸함), 콘트라바순

금관: 호른8(7, 8번 주자는 테너 바그너 튜바를 겸함), 피콜로트럼펫(D), 트럼펫(C)4(4번 주자
는 베이스트럼펫(E플랫)을 겸함), 트롬본2, 베이스 트롬본1, 베이스 튜바2
타악기: 팀파니5(연주자 2명), 큰북, 탐탐, 트라이앵글, 심벌즈, 앤틱 심벌즈, 탬버린, 기로
현악기: 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발레 음악 치고는 거의 바그너 오페라에나 쓰임직한 5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을 구사한 것도
중요한데, 단순히 크기만 크게 불린 것뿐 아니라 특수 관악기들을 대거 투입하고 현악 파트도
기존의 5분할 이상으로 잘게 쪼개거나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 같은 악기들을 독주 혹은 중주
로 구사하는 등 의외로 섬세하고 정밀한 면모를 볼 수 있다.

물론 연주 난이도도 당대의 어떠한 관현악 작품들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었고, 특히 1부의 서
주 첫머리에 나오는 바순의 고음역 솔로는 지금도 관현악단에서 바순 주자를 뽑을 때 꽤 자주
과제로 내놓을 정도로 숙련된 기교를 요한다. 워낙 편성이 큰 탓에, 초연 후 발레로 상연되기
보다는 무용을 생략하고 관현악 연주회의 레퍼토리로 공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휘자에게도 꽤 도전적인 레퍼토리인데, 현대음악 쪽에 특화된 지휘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기존 곡처럼 지휘자가 자기 재량으로 곡을 연주시켰다가는 곡의 색
깔을 죄다 망쳐놓는 일이 다반사라서, 가능한 악보의 지시에 충실하게 연주하는 것이 곡의 특
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대음악의 일반적인 성격을 미리 보여준 곡으로도 평가받는다.

초연 후인 1921년과 1943년 두 차례 개정한 판본을 내놓았는데, 각 판본들 사이에는 큰 차이
점은 없고 세부적인 면을 주로 수정한 정도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1913년 초연판. 이외
에도 피아노 두 대를 위한 축약형 편곡판이 존재한다.

◇ 출처 / 나무위키, 정옥희(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의 글, 불로그 <나누는 세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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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뒤파르크(Henri Duparc, 1848년 1월 21일~1933년 2월 12일) 가곡집(melodie)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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